북한, 통일 문제

누가 북한에 핵무기 100개를 안겨줬나? - "북 핵무기 100개, 美 군산복합체 위한 과장"

일취월장7 2015. 3. 6. 10:21

누가 북한에 핵무기 100개를 안겨줬나?

[정욱식 칼럼] 2020년 핵무기 100개, MB와 오바마의 합작품!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2015.03.02 14:24:21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는 크게 두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하나는 '선(先)핵폐기'이고, 또 하나는 대화가 북한의 핵개발과 고도화에 시간만 벌어줬다는 인식이다. 이에 따라 두 정부는 남북관계를 핵문제에 종속시키는 경향을 보였고, 또한 대화와 협상보다는 대북 제재와 봉쇄에 초점을 맞췄다. 이러한 추세는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이와 관련해 지난주에 주목을 끈 보고서가 있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와 미국 국방대 대량살상무기연구센터가 지난 1년간 연구를 거쳐 내놓은 '북한 핵 미래 프로젝트' 보고서가 바로 그것이다(☞보고서 보기). 국내 언론은 2020년경의 예상치를 주목했다. 북한이 2020년에 최소 20개, 최대 1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고, 중간치로 50개를 갖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북한이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핵무기 소형화도 상당 부분 진전을 이뤄, 중·단거리는 물론이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도 핵탄두 장착이 조만간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도 주목을 끌었다. 

2009~2014년에 비약적인 증강 

필자가 이 부분 못지않게 주목한 부분이 있다.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 증강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달성한 성과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쉽게 말해 이 6년간의 축적된 능력이 향후 6년간의 핵 능력 강화의 토대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2009~2014년까지 가시적인 대목들은 두 차례의 핵실험과 세 차례의 장거리 로켓 발사가 있다. 그런데 보고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핵무기 현대화, 핵분열 물질 생산 능력 확대,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 증강, 기존 우주발사체(SLV)보다 강력한 장거리 추진체 개발 등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 2010년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이명박(왼쪽)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 2010년 워싱턴에서 열린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이명박(왼쪽)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이를 분야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핵무기 현대화와 관련해 가장 주목할 점은 탄도미사일 장착이 가능한 소형화이다. 북한의 2006년 1차 핵실험은 사실상 실패로 규정되었을 정도로 폭발력이 작았다. 반면 2009년과 2013년 두 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폭발력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만큼 소형화에 가까워졌거나 그 문턱을 넘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라늄 농축 시설도 2009년부터 본격 착수해 2010년에 2000개의 현대식 원심분리기를 갖춘 시설을 완공했고, 2013년에 그 규모를 두 배로 늘렸다. 불능화되었던 5메가와트 흑연감소로도 재가동에 들어갔다. 

이러한 핵 능력 증강은 운반수단인 탄도미사일 향상과 병행되었다. 연이은 시험 발사를 통해 로켓 성능과 정확도를 향상시키는 한편, 생존율을 크게 높이는 이동식 발사대도 대거 확보했다. 아울러 발사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는 고체 연료 사용 미사일도 실전 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근혜-오바마, 이 보고서 꼭 읽어야 

이러한 상황 전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그건 북핵 능력 증강이 6자회담 단절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2008년 12월 결렬된 이후 6자회담은 오늘날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다. 때때로 북한이 6자회담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한미 양국이 이런저런 조건을 달아 무조건적인 재개를 거부한 탓이 컸다.

여기서 예견된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핵을 포기해야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하다는 선핵폐기론에 집착했다. 그 결과는 북핵과 남북관계의 동시적인 악화였다. 또한 '대화가 북핵 고도화의 시간을 벌어주었다'고 했지만, 진실을 정반대이다. 대화가 단절된 시간이 북핵 고도화로 이어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을 통해 이 보고서는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복귀시키지 못하면, 그 위험은 더욱 커지게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일갈했다. <동아일보>조차도 사설에서 "북핵 문제가 아무리 풀기 어려워도 6자회담 재개 등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허송세월하다 북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재앙에 부닥쳐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토록 '북핵 불용'을 외쳐왔던 한미 양국 정부는 묵묵부답이다. 무지와 무능과 무위가 결합된 3무의 대북정책이야말로 지난 6년간 북핵을 키운 핵심적인 요인이었다. 또한 이러한 대북정책이 계속되면 '2020년 북핵 100개 시나리오'는 기우가 아니라 현실이 될 공산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보고서를 가장 정독해야 할 당사자들은 한국의 박근혜 정부와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이다. 이에 앞서 보고서 작성을 주도한 조엘 위트 전 국무부 북한담당관의 충고도 음미할 법하다.

그는 오바마 행정부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북한 쪽에 '비핵화 아니면 고립'을 선택하라고 제안했다면, 북한이 앞으로 이렇게 핵능력을 확장하면 북한 쪽에서 오히려 '핵국가로 인정할 거냐 아니면 한반도 불안정을 받아들일 거냐'를 선택하라고 압박할 것이다." 

위트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지금 한국 정부가 통일을 이야기하지만, 현실적으로 핵무기 50~100개를 보유한 국가가 자신들이 원치 않는 조건으로 통일을 하려고 하겠느냐?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 핵무기 100개, 美 군산복합체 위한 과장"

[정세현의 정세토크]"박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는 동문서답"

이재호 기자(정리) 2015.03.03 11:49:51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한에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서신교환 등을 협의하자고 촉구했다. 또 통일준비위원회와 통일헌장 수립 등 박근혜 정부의 통일준비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 있지 않다며 남북대화를 외면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에 북한은 3일 대남매체인 우리민족끼리를 통해 '체제대결의 망상'을 드러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 대통령이 또다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하며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이 호응해 나오라고 한 것을 두고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라는 게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심각한 인권침해에도 저렇게 대응하는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라는 우리 정부의 말을 듣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북한에게 있어 남북체제가 극명하게 비교되는 정치적 문제이자 부담스러운 사업"이라며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 이후부터다. 남측에서 쌀과 비료가 고정적으로 북한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내부의 정치적인 부담을 상쇄시킬 수 있을만큼의 인센티브가 주어져야 상봉이 정기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통일준비가 북한을 고립시키는 것이 아니라며 "(북한이) 진정성 있는 대화와 변화의 길로 들어선다면 모든 협력의 길이 열려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상대가 극도로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진정성'있게 하자고 하면 정말 관계 개선이 가능한가"라고 되물었다. 북한은 통준위를 '흡수통일의 전위부대'라며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인 바 있다.  

그는 햇볕정책을 처음으로 발표했을 당시에는 북한이 이를 흡수통일로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민간 교류와 협력을 대폭 확대하고 이들을 통해 햇볕정책의 실상을 북한에 전달했다면서,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고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정책을 북한에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서는 민간 교류의 빗장을 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북한과 정말 대화를 하겠다는 진정성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을 당시 발표문을 북한에 미리 전달해서 내용을 알게끔 했던 것을 언급하며 "우리가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는 의도를 행동으로 보여줘야"한다고 조언했다. 

한편 최근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이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관련, 정 전 장관은 "국제정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연구자의 국적이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조엘 위트의 분석에도 미국의 이익이 일정 부분 담겨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3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이(DNI)이 당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핵심 당국자들을 불러보아 2013년까지 북한이 핵무기 40개를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브리핑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정말 2013년에 북한이 핵무기 40개를 보유하게 됐나"라고 되물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남북 간 군사력 차이가 2대11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서는 "턱도 없는 소리"라면서 "남한에 최신 전투기가 460대 있고 북한은 구형 전투기가 820대 있다고 한다. 양으로만 따지면 북한이 많지만, 달구지급 자동차 820대와 포르셰급 스포츠카 460대 중 어떤 것이 능력이 더 우수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인터뷰는 2일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편집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3.1절 기념사를 통해 북한에 남북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상봉 정례화, 서신 교환 등을 협의하자고 밝혔습니다. 기존에 했던 제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요. 

정세현 : 우선 3.1절 기념사를 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대해 너무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저렇게 말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제기하면 북한이 '인도주의'라는 대의명분 때문에 꼼짝 못 하고 나오리라고 생각해서인지, 북한에 회담을 제의할 때마다 단골 메뉴로 이산가족 상봉을 들고나오는데,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북한에게 이 문제는 대내적으로 굉장히 복잡한 정치문제입니다. 남북한 체제 비교가 극명하게 되는 행사이기 때문에 굉장히 부담스러워합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꺼리는 것을 북측 인사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1998년 4월 이른바 '비료회담'이라고 불리는 남북 차관급 회담이 베이징에서 열렸습니다. 제가 남측 수석대표로 참석했습니다. 이 때 북측 회담 대표였던 전금철 단장은 "이산가족 상봉은 굉장히 복잡한 정치문제"라고 말하면서 우리의 비료 지원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북한이 필요로 하는 비료 20만 톤을 줄 수 있으니, 대신 그해 가을에 이산가족 상봉 사업을 진행하자고 제의했습니다. 북한이 김영삼 정부 말기에 적십자 접촉을 하는 과정에서 비료 이야기를 꺼냈고, 새 정권인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비료에 계속 관심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성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동안 실랑이를 벌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전 단장은 이산가족 상봉이 복잡한 정치문제라고 하면서 내부적으로 부담이 많다는 이야기는 안 하고, 남측 정권이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국민들에게 점수를 따려고 한다는 식으로 둘러댔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북한 내부의 문제 때문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산가족 상봉이 본격화된 것은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입니다. 설과 추석 등 명절 계기로, 그리고 중간에도 구실을 찾아서 일년에 서너 번 씩 상봉을 진행했습니다. 불과 2년 전에는 비료도 받지 않고 상봉을 거부했던 북한이 이렇게 돌변한 이유는 남측의 쌀과 비료가 고정적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박 대통령이 과거의 이산가족 상봉이 어떻게 성사됐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만약 박 대통령이 말하는 대로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다면 북한 내부의 인권 문제라는 게 애초에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한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국제사회에 대해 자기들은 배부른 소리 할 처지가 안 된다면서 인권 문제는 없다고 대응하고 있습니다. 정치범 수용소를 비롯해 심각한 인권침해에도 저렇게 대응하는 북한이, 인도주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라는 우리 정부의 말을 듣겠습니까? 

프레시안 : 박 대통령의 기념사를 보면 통일 준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통일 준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서 남북대화에 나오라고 촉구했는데요.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96주년 3.1절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세현 : 박 대통령이 동문서답을 한 것입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하는 통일 준비는 북한을 고립시키려는 것이 아니고, 북한을 개방과 변화로 끌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같은 날 기관지인 <노동신문> 사설을 통해 "기만적인 대화 타령을 걷어 치우"라며 통일대박론이나 통일헌법 등이 오히려 체제 대결만을 심화시킬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북한에서는 남한이 자신들을 흡수통일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며 통일준비위원회를 비롯해 통일헌장 제정 착수 등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통준위나 통일 헌장 등은 흡수 통일을 위한 것이 아니라, 먼 훗날 통일을 대비해서 미리 연구를 해놓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지나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흡수통일 전략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이러한 움직임들이 사실상 흡수통일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해버리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개방과 변화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을 끌어내려면 대놓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왕래하는 과정에서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자신도 모르게 변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날 북한이 "어? 우리가 여기까지 왔네?"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원래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데이트 상대 만날 생각도 없는 상황에서, 만나기도 전에 "내가 너랑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면 어느 누가 그 자리에 나가겠습니까?  

일반적으로 그동안 8.15는 기념사는 대북메시지, 3.1절 기념사에는 대일 메시지가 들어갔는데 이런 정도의 메시지를 북한에 보낼 것이었다면 차라리 말을 안 하고 지나가는 게 훨씬 좋았을 겁니다. 

프레시안 : 북한의 현재 실정, 북한이 정말 원하는 것을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을 대등한 대화 상대가 아니라 일방적인 통일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발언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2000년 3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2000년 6.15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이 연설이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남한에 적대적이었던 북한의 마음을 돌려놓았기 때문 아닙니까?  

정세현 : 남북관계를 갑을 관계로 보는 사고방식이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에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는 접근인데요. 이런 식이면 북한과 대화 못합니다. 북한이 어떤 심리상태를 가지고 남한을 바라보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북한은 이미 1980년대 후반부터 흡수통일에 대한 공포가 강했습니다. 당시 사회주의권은 붕괴되기 시작했고 소련마저도 고르바초프 때부터 시작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으로 체제 전환이 일어나던 상황이었습니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북한은 자신들도 그렇게 될 것이라는 공포가 심했습니다.  

게다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북한 사회는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후 3년 동안 홍수와 가뭄 피해가 잇따랐습니다. 농업 기반은 황폐화됐고 탄광과 철광이 무너져 지하자원을 캐는 것도 어려웠던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였습니다.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막 끝내가던 시기에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북한이 무력 도발에는 반대하지만 △북한을 흡수통일하려는 것이 아니며 △우선 남북 화해협력을 진행하겠다는 대북정책을 천명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북한은 햇볕정책을 두고 뒤집어놓은 흡수통일 정책이니, 자기들을 녹여먹으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식으로 반응했습니다.  

북한은 이처럼 굉장히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국력 격차가 심해지니까 남쪽에 대한 열등의식이 강해진 겁니다. 그러다 보니 행동에 있어서는 자존심을 세우는 식으로 나옵니다. 북한이 남한을 상대로 하는 거드름이나 체면의 뒷면에는 엄청난 대남 열등의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정부는 북한의 이러한 대남방어적인 심리를 어떻게 달래가면서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정부는 뒤로 빠지고 민간을 앞세우자고 결정했습니다. 햇볕정책이 북한을 흡수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민간 차원의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북한이 깨닫게 하는 식으로 정책 방향을 잡았습니다. 이것이 민간 접촉을 시작으로 당국 간 협상의 길을 연다는 이른바 '선민후관'(先民後官) 정책이었습니다.  

1998년부터 정부는 민간 차원의 북한 방문 승인을 대폭 확대했습니다. 또 민간 기업의 대북 사업을 늘리면서 경제를 앞세워서 북한을 흡수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을 북한에 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2년 동안 공을 들인 끝에 정상회담이 성사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는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입 밖에도 내지 않았습니다. 행동으로 북한에 보여줬습니다.  

베를린 선언 당시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 정부는 이 내용을 연설 하루 전에 북측에 통보해줬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분단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에 가서 남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할 것이니 미리 알고 있으라고 전해준 겁니다. 상대가 우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먼저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죠.

이런 것이 진정성입니다. 난데없이 뒤통수를 때리거나,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거나, 상대가 극도로 싫어하는 말과 행동을 하면서 '진정성'있게 하자고 하면 정말 관계 개선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남북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가려고 한다는 의도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북쪽에서 '진짜 저 사람들이 우리를 어찌 해보려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되는 겁니다.  

프레시안 : 우리는 지난해부터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가 돼야한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이렇게 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경색돼있는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어떤 수순을 밟아야 할까요?  

정세현 : 우선 한 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제가 김대중 정부에서 장·차관을 했기 때문에 햇볕정책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신데, 저는 갑자기 김대중 정부 때 나타난 사람이 아닙니다. 박정희 정부 이후로 통일의 현장에서 뛰면서 북한이라는 대상을 꾸준히 연구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 때는 3년 8개월 동안 통일비서관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먼저 북한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통일부에서 30년 이상 북한을 꾸준히 관측하고 분석하며 경험했던 시간들을 회고해보면 북한은 쉽게 붕괴할 집단이 아닐 뿐만 아니라 북한이 가지고 있는 열등의식도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걸 자극하지 않고 북한을 우리 페이스대로 끌고 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햇볕정책은 그나마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봅니다. 햇볕정책은 앞서 말씀드린 '선민후관'(先民後官)을 비롯해서 쉬운 일을 먼저 하고 어려운 일을 나중에 한다는 '선이후난(先易後難)', 경제 교류를 먼저 하고 정치 협상은 나중에 한다는 '선경후정(先經後政)',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는 '선공후득'(先供後得)을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특히 관(官)이 아니라 민(民)이 먼저 나섰기 때문에 북한과 거리를 좁힐 수 있었습니다. 
 
 
박근혜 정부도 이런 방식을 취해야 합니다. 정부가 아니라 민간이 북한과 접촉하게 하면서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에 진정성이 있다, 통준위와 통일헌장 등도 나중에 당신들과 함께 만들어갈 것들을 미리 준비하고 있는 차원일 뿐이다 등등 북한을 안심시킬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합니다. 

더불어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것을 민간차원의 대북지원이나 교류협력으로 지원해주면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응하면 더 많은 것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합니다. 맨입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상응한 대가를 북한의 손에 쥐어주면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 박근혜 정부의 대외정책에 북한이 얼마든지 협조해 나올 수 있습니다. 

특히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매우 간단한 사업입니다. 북한지역에 철도가 통과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미 경의선은 연결돼있지 않습니까? 그거 개통하자고 하면 풀리는 문제입니다. 이걸 진행시키려면 남북관계를 풀면 됩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마저도 엉뚱한 곳에서 답을 찾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를 개선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보다는 동해선의 끊어진 철도를 복원하는 것을 먼저 하겠다고 합니다. 강릉에서 제진까지 117km 구간을 복원하는 것이 박 대통령이 말하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구축하기 위해 사전에 반드시 해야 하는 작업인지 의문입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물류입니다. 부산이나 인천에서 배를 통해 유럽에 물자를 실어 나르는 것보다 기차를 이용하면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 아닙니까? 그러자면 강릉-제진의 동해선이 아니라 경부선에서 경의선, 평원선(평양-원산), 그리고 시베리아 횡단철도로 이어지는 노선을 이용하는 것이 편리합니다. 이미 경의선 철도는 연결돼있기 때문에 남북이 이 노선을 개통하자고 하면 끝나는 문제입니다. 

반면 박 대통령이 말한 동해선 연결 작업은 언제 작업이 마무리될지도 모릅니다. 철도가 지나가야 할 곳이 이미 7번 국도로 편입된 곳도 있고, 심지어는 상권이 조성돼있는 곳도 있습니다. 땅을 사들이고 철도를 까는 작업을 박 대통령 임기 내에 완성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러시아에서도 동해선과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연결하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경부선을 통해 서울과 개성을 거쳐 올라와야 물류 수요가 있고, 그래야 수익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동해선은 연결해봐야 주 목적이 관광이기 때문에 경제적 파급 효과가 별로 없다는 분석입니다.  

그런데 굳이 박근혜 정부가 동해선부터 먼저 연결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끊어진 동해선을 연결하면 국제사회에 '남한이 통일을 위해서 노력하네'라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일까요? 아니면 한국 국민들과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울리기 위해서 일까요? 제 눈에는 실질적인 진전은 없으면서 그저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프레시안 : 결국 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보면 북한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한편으로는 박 대통령이 북한을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는 할 만큼 했는데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서 남북관계 개선을 하지 못했다는 명분을 만들고 싶어서 이런 식의 제안을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정세현 : 남북관계가 진전되지 못하는 책임이 북측에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측면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관계 개선을 위해 할 만큼 했는데도 북한이 나오지 않는다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가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올해 정말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면 이런 식의 정치적 계산을 할 시간에 북한이 현재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고, 남한이 무엇을 던져야 북한이 호응해 나올 수 있을지 연구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북한, 2020년에 핵무기 100개 보유한다?  

프레시안 : 북한과 대화 통로는 막혀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핵능력은 계속 향상되고 있습니다. 북한문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를 운영하고 있는 조엘 위트 미국 존스홉킨스대 초빙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이 현재의 추세로 핵개발을 지속할 경우 2020년까지 최대 100개에 달하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정세현 :
조엘 위트는 고위직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국무부에 오래 있었고 실무 관료로서 성실하게 본인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후에도 말씀하셨다시피 38노스라는 북한 전문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위트에 대한 신망이 상당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제정치 세계에서 나 아니면 전부 '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좋을 때 동맹이지 이해관계가 부딪히면 동맹도 남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과학적인 분석에서는 연구자의 국적성이 강하게 개입됩니다. 어느 나라 전문가든 그 나라의 국익을 전제로 분석하고 대책을 내놓는 경향이 높기 때문에 위트의 발언에 대해서도 이런 점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제가 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배울 때 너무 방어적인 입장에 있는 선생님들로부터 수학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직접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히면서 이러한 관점이 옳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한미 간에 무역 역조 현상이 심해지자 미국은 슈퍼 301조를 만들어 한국시장을 개방하라고 엄청난 압력을 넣었습니다. 6.25전쟁 직후 우리가 가난했던 시절에 너그럽게 구호 물품을 지원해주던 미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이때 국제정치의 냉혹함을 절감했습니다.  

수집한 첩보(information)를 전략적 가치를 갖는 정보(intelligence)로 생산하는 과정에서 국적이 개입되곤 합니다. 즉 정보의 생산 과정에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반영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난 2012년부터 시작된 연방 예산 자동 삭감 제도(sequester)에 따른 국방예산 감축을 저지하거나 한국의 무기 시장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연구 결과가 활용될 수 있습니다.  

조엘 위트는 북한의 핵 능력을 △저성장 △중간성장 △고성장 등 세 가지로 분류한 뒤에 2020년 예상되는 핵무기 개수와 폭발력을 계산했습니다. 그 결과 고성장이 가능할 경우 북한 핵무기 개수가 100개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저성장의 경우 20개, 중간성장의 경우 50개 정도가 된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발표를 보면서 2003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DNI)이 한국에 와서 북한의 핵 능력을 추산한 자료를 브리핑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당시 통일·외교·국방 장관을 비롯해 외교안보수석 등 핵심 관계자들이 청와대 지하 벙커에 모여서 설명을 들었습니다. 국가정보국은 10년 후인 2013년 북한의 핵무기가 40기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도 대북 압박정책에 동참하라고 압력을 넣었습니다. 

당시는 2002년 10월 미국 켈리 특사의 방북으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이 밝혀졌다는 것을 구실로, 미국이 북·미 간 제네바 기본 합의를 파기한 상황이었습니다. 북한의 핵 활동 중지 등을 골자로 하는 제네바 합의가 휴지조각이 된 뒤 북한을 계속 압박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발전시키겠다고 하니 이를 돌리기 위해 이같은 브리핑을 준비한 겁니다. 그런데, 2013년에 정말 북한의 핵무기가 40기가 됐습니까?  

조엘 위트도 이번에 유사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핵무기가 100개로 늘어날 수 있는데 무슨 통일을 할 것이냐고 말입니다. 이걸 보면서 국제정치 문제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국적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위트의 이번 발표를 두고, 북한의 핵 능력이 커졌으므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이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서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정세현 : 그 분석에 그런 의미가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매년 7월에 있는 예산 심의에 앞서서 2~4월까지는 국제정세나 국제상황과 관련한 보고서가 많이 나옵니다. 민간 연구소라고 하더라도 군산복합체와 연결돼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렇게 되면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쪽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은 국방예산을 해마다 500억 달러씩 줄여나가야 합니다. 또 미국의 국가 이익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곳은 동북아시아입니다. 중국 때문이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이나 주일미군 군사력을 증강하거나 최소한 예산을 감축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습니다. 7월 예산 심의에서 의회가 군 예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면 지금부터 사전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런 보고서가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이 최근 발표한 남북 군사력 비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와 북한의 군사력이 2:11이라고 하면서 북한의 군사력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턱도 없는 소리입니다. 수량만 가지고 비교하는 것은 적절한 비교 방식이 아닙니다. 남한에 최신 전투기가 460대 있고 북한은 구형 전투기가 820대 있다고 합니다. 양으로만 따지면 북한이 많지만, 달구지급 자동차 820대와 포르쉐급 스포츠카 460대 중 어떤 것이 능력이 더 우수하겠습니까? 더군다나 북한의 전투기 중에는 레이더가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러다 보니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조차도 이런 군사력 비교에 대해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가 있는 집에 옛날에 쓰던 석유곤로가 있다면, 음식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느냐와 같은 것"이라고 일갈하지 않았습니까. 쓰지도 않는 석유곤로를 조리도구에 포함시키면 숫자는 많을 수 있어도 사실상 의미 없는 도구인 것처럼, 쓰지도 않는 무기를 숫자에 포함시키면 양적으로는 북한이 군사력 우위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질적으로는 의미 없는 수치라는 겁니다.   

프레시안 : 그럼 미국에서 잇따라 나오고 있는 이런 보고서들은 결국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력을 확충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미국의 전문가들 중에 애국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미국이 동북아에서 중국에 밀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태평양함대사령부의 예산을 깎으면 안되고, 일본이나 한국이 자체적으로 국방 예산을 늘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헤리티지 재단은 실수한 것 같습니다. 한 꺼풀만 벗겨 보면 뻔히 알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이렇게 분석해버리면 앞으로 누가 헤리티지 재단의 보고서를 믿겠습니까? 설사 이런 의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적당히 해야 하는데 이번 보고서는 너무 나갔습니다.  

 

 

 한미군사훈련, 역발상이 필요하다!

[정욱식 칼럼] 한반도 상황, 한가하지 않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프레시안 편집위원 2015.03.04 16:01:35

매년 한반도는 초봄과 초가을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으로 홍역을 치른다. 훈련을 하려는 한미동맹과 훈련을 중단하라는 북한 사이의 갈등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신년 들어 북한은 한미군사훈련 중단을 남북대화 및 핵실험 임시 중단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제시했다. 반면 한미 양국은 그러한 조건은 수용 불가라고 거부했다.

그리곤 3월 2일부터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이 시작됐다. 지휘소 훈련인 키 리졸브는 이번달 13일까지, 야외기동 훈련인 독수리 훈련은 다음 달 24일까지 계속된다.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훈련 개시일에 2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시험 발사로 응수했다. 또한 한미 군사훈련에 "통일대전으로 응수하겠다"고 위협하고 있고 "대화의 기회도 사라졌다"고 반발한다. 이에 대해 남한은 "어떤 도발도 뼈저리게 후회하게 만들 것"이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이처럼 매년 군사 훈련을 둘러싸고 일촉즉발의 위기를 겪는 지역은 전세계적으로도 한반도가 유일하다.

그렇다면 한미군사훈련을 어떻게 봐야 할까? 군대가 있으면 군사훈련을 해야 하고, 군사동맹을 맺고 있으면 연합훈련을 하는 게 당연해 보일 수 있다. 더구나 한반도는 아직 '종전'이 아니라 '휴전' 상태에 있다. 군사적 대치 상태도 여전하고 북핵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고 억제가 실패하면 격퇴할 준비를 하기 위해 한미연합훈련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연함 속에 위험이 잉태되고 있고 막대한 기회비용도 치르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이 대표적이다. 흩어진 가족이 만나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시기는 설 연휴와 추석 연휴가 다가올 때이다. 그런데 대개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은 설 연휴 직후에 실시되고 을지프리덤가디언은 추석 연휴 직전에 실시된다. 북한은 이러한 군사 훈련을 이산가족 상봉 등 남북관계와 연계시킨다.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에는 군사훈련에 반발하면서도 이산가족 상봉에 나선 경우가 많았다. 사이가 좋을 때에는 군사훈련의 파고도 남북관계를 집어삼킬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이후 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은 증폭되어왔다. 그 원인은 다차원적이다. 우선 MB 정부의 흡수통일론을 들 수 있다. 2008년 하반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자, MB 정부는 흡수통일을 노골적으로 추구했다.  

그 갈등은 2009년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 때 폭발했다. 한미 군 수뇌부는 이 훈련이 북한 급변사태 대비라고 공개적으로 말했고, 그만큼 북한의 반발 수위도 높아졌다. 특히 북한은 새롭게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에게 군사훈련 중단 여부를 북·미 관계의 시금석으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훈련 중단을 요구했다. 미국이 이를 일축하자 북한도 대규모의 무력시위에 나섰다. 

유사한 상황은 2011년에도 반복됐다. 남한 군 당국자들은 한미군사훈련이 김정일 유고 등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언론에 흘렸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이 평양에까지 갈 날이 머지않았다는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자 북한도 '서울 불바다' 발언을 다시 내놓으면서 위기 지수를 높였다. 이처럼 MB 정부 이후 한미군사훈련의 목적이 북한 급변사태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북한의 반발 및 이에 따른 한반도 위기도 증폭되어왔다. 

북한의 권력 세습 및 핵 능력 증강도 한미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 수위를 높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병영국가'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의 지도자는 군 장악과 최고 군사령관으로서의 위상 확립을 위해 미국의 위협을 과장하는 경향이 강하고, 한미군사훈련은 이를 위한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해왔다. 아버지의 급서로 권력을 장악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으로서도 이러한 필요를 강하게 느껴왔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핵과 미사일 능력이 강해지면서 한미군사훈련 중단과 같이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강압 외교'의 수단으로 동원하고 있다.

미국 측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군사력을 패권주의의 핵심 수단으로 삼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한미군사훈련의 매력을 강하게 느낀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할 수 있고, 북한의 위협을 이유로 군비증강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한미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과 위기가 증폭된 데에는 남한의 흡수통일론, 핵의 위력을 과신한 북한의 모험주의, 남북관계 악화, 미국의 군사패권주의 등이 종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에 있다. 서로 근력을 과시하고 말폭탄을 던지는 수준에서 군사훈련 고비가 넘어간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여러 차례 경험했고 오늘날에도 그 위험성이 내재되어 있듯이 언제든 무력 충돌이 일어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는 게 한반도의 현실이다. 특히 촌각을 다투는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되어온 것도 부인하기 힘든 현실이다. 아울러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을 핵과 미사일 능력 강화의 기회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한 국방부는 군사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발을 남북관계에서 북한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한다. 뒤집어 말하면 북한의 요구대로 군사훈련을 중단하면 북한에게 끌려다닐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현실은 이러한 아전인수만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오히려 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선제적 조치를 통해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역발상이 요구된다. 

이러한 역발상이 빛을 발한 때가 있었다. 바로 노태우-부시 콤비였다. 이 사례를 비롯해 한미군사훈련의 역사를 다음 글에서 다뤄보고자 한다.  

 

 

 남북관계, 너무 많이 기대하지 마라!

[김근식의 남북관계 중년부부론] <2>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엄정한 평가 (1)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 2015.03.06 08:01:14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과거에 대한 엄정한 평가와 현재에 대한 정확한 진단에 기초해야 미래의 새 전략과 비전이 도출된다. 새로운 남북관계를 모색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에 대한 성찰적 평가와 변화된 조건·환경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하고 나서야 올바르고 현실 가능한 미래 남북관계의 방향과 전략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 과거 남북관계에 대한 엄정한 반성적 평가를 해보자.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한마디로 '우여곡절'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의 첫 번째 특징은 진전과 퇴보를 거듭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는 점이다. 대화가 잘되어 관계가 나아지다가도 돌발상황이나 쟁점부각으로 인해 다시 역으로 후퇴하는 경우가 오히려 다반사였다.  
  
노태우 정부 때 남북은 오랜 협상 끝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다. 문건의 내용은 지금 봐도 손색없는 남북관계 미래 모습의 '모범 답안'이었다. 그러나 합의서 잉크도 마르기 전에 북핵문제가 대두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고 말았다. 김영삼 정부도 민족이 동맹보다 낫다며 대북 쌀 지원을 결정했지만 정작 쌀 지원 과정은 인공기 게양문제와 선원 억류 사건이 불거지면서 상호 불신과 적개심만 증폭시키고 말았다.
  
본격적인 화해협력이 시작되었던, 역사적인 관계 개선을 이뤘던 김대중 정부 시기조차도 2001년 초 장관급 회담이 결렬되어 남북관계가 일시중단됐고, 급기야 대북 특사 방북을 통해 관계 정상화가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역시 북핵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가 지속되었지만 2004년 해외 탈북자 대거 입북 문제로 북이 반발하면서 장관급 회담이 중단되었다가 2005년 6.17 면담으로 가까스로 재개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전반적인 관계 경색의 와중에서 2009년 하반기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진행되기도 했고 임태희-김양건 회동을 통해 정상회담 합의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합의 번복과 금강산관광 회담 결렬 이후 북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을 함으로써 남북관계는 완전 중단됐다. 지금의 박근혜 정부 역시 개성공단 중단 등 기싸움을 벌이다가도 결국은 공단 재가동에 합의하는가 하면 2014년은 고위급 접촉 성사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도 성사되었지만 황병서 일행의 방남에도 불구하고 남북이 합의한 2차 고위급 접촉은 성사되지 못했다. 화해협력을 중시하는 정부든, 대북강경을 불사하는 정부든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는 한 번도 순탄하게 관계 개선을 지속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두 번째 특징은 화해협력과 불신대립이 병행했다는 점이다. 남북관계 개선과 함께 민족화해가 증진되고 경제협력이 증대되고 사회문화적 교류가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필자도 금강산과 개성을 제외하더라도 평양과 백두산 등 북한을 10여 차례 넘게 방문했다.  
  
그러나 동시에 상호 불신과 갈등도 지속됐다. 민족공동행사를 위해 매번 우리가 평양을 방문하고 북측이 남측을 방문했지만 6.15와 8.15를 기념하기 위한 남북공동행사는 항상 막판까지 줄다리기 협상과 밤샘 버티기, 그리고 티격태격의 연속이었다. 동포를 만나는 설렘과 가슴 벅참도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측에서는 매번 지침과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만날수록 북측과의 이질감이 커지고 서로 체제를 지키려는 완고한 정치의식이 불거져 나오면서 남북의 만남은 감동과 기쁨보다는 오히려 기싸움의 성격이 강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내부의 남남갈등 증폭이라는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 냉전 시대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사실 존재하지 않았거나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탈냉전 이후 남북관계 개선은 우리 내부에 대북정책을 둘러싼 팽팽한 이념대립과 노선갈등을 유발시키고 말았다. 
  
우여곡절의 남북관계 세 번째 특징은 합의와 불이행의 롤러코스터가 지속되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남북관계는 어렵게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이에 대한 온전한 이행은 한 번도 없었다. 역사적인 드라마였던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태어난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합의 사항은 실제로 이행되지 못했다. 남북 기본합의서, 비핵화공동선언 등 굵직한 남북 합의는 지금은 휴짓조각이 되었거나 되살리기 힘든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각종 실무회담에서 합의된 수많은 다양한 합의서와 문건들은 고스란히 통일부 자료집에 부록으로만 정리되어 있을 뿐이다. 합의해놓고 이행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역설적 현실이 바로 지금까지의 우여곡절의 남북관계를 그대로 드러낸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의 남북관계는 가다 서다하지 않는, 일희일비하지 않는, 합의해놓고 불이행하지 않는 그런 관계가 돼야 한다. 미래의 남북관계는 지속성과 불가역성과 합의이행을 담보하는 이른바 '제도화'(institutionalization)가 절실하다.  
  
우여곡절과 롤러코스터가 아니라 조금씩이라도 꾸준히 지속되는 남북관계, 가다 서다가 아니라 더디고 느리더라도 한번 진전되면 역행되지 않는 불가역의 남북관계, 합의해놓고 휴지조각이 되는 남북관계가 아니라 합의하면 반드시 이행을 담보하는 안정적인 남북관계. 지속성과 불가역성과 합의이행을 담보하는 남북관계의 '제도화'가 절실하고 절박하고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과도하게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북과의 만남이나 대화를 그저 순진하게 설렘과 감동으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무리한 감성이 아닌, 화해협력의 가능성과 현실성에 토대해서 철저히 지속가능하고 이행 가능한 화해협력의 관계를 고민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남북대화와 관계개선이 마치 잘못된 것이라든가 북에게 굴복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대북 강경과 압박만으로 접근하는 것 역시 지양되어야 한다. 대북 강경과 고집도 또 다른 의미의 매우 감정적인 접근이다. 주관적 희망과 근거 없는 기대만을 내세운 채 압박 위주의 대북강경이 우리가 원하는 남북관계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는 것도 현실과 동떨어진 또 하나의 감정적 고집에 불과한 것이다.   
  
화해와 협력, 대화와 합의만이 남북관계의 능사가 아니다. 또 압박과 봉쇄, 원칙과 고집만이 남북관계의 해법도 아니다. 두 가지 모두 사실은 지나치게 북을 선의로 대하거나 악마로 간주하는 극단적 감정주의 접근이다. 남북관계가 항상 진전되어야 한다거나 남북관계는 항상 경색될 것이라는 지나친 희망과 과도한 실망 모두를 경계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항상 개선될 것이라는 최대목표도 아니고 동시에 매번 경색될 것이라는 최소목표도 아닌, 즉 지나친 기대와 지나친 포기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야 우여곡절의 남북관계를 이제는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