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학교를 왜 가야 하나 답해야 하는 시간

일취월장7 2020. 6. 18. 12:25

학교를 왜 가야 하나 답해야 하는 시간

  • 변진경 기자
  • 호수 666
  • 승인 2020.06.18 11:38

 

코로나19 이후 학교 현장은 딜레마로 가득하다. ‘굳이 학교를 왜 가야 하나’라는 질문이 공교육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 방역과 학습, 안전과 배움의 균형을 찾는 일 또한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학교가 위기 대처도 잘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6월3일 서울 중앙고등학교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

묶음기사

학교는 일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고3부터 시작한 순차 등교 개학이 6월8일 초등 5~6, 중1까지 모두 마무리됐다. 이제 거의 모든 초·중·고교 학생이 한 번 이상은 새 담임교사와 같은 반 친구들 얼굴을 확인했다. 짜놓은 시간표대로 수업을 마치고 시험을 치르며 급식도 먹는다. 학생들은 일과 내내 마스크를 벗지 않고 손 씻기, 거리두기에도 그럭저럭 잘 동참하는 편이다. 교복 입고 책가방 멘 학생들이 학교 교문을 들어서고 나오는 모습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던 우리 사회에 다소간 안정감을 줬다. 코로나19로 무너진 일상이 조금씩 회복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작은 기대감도 선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학교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등교 개학을 시작한 학교 현장에서 이미 몇 가지, 아니 수십 수백 가지 시행착오가 보고되고 있다. 등교 개학 이전에 걱정하고 예상하던, 충분히 예측 가능했지만 별다른 도리가 없어 결론을 못 내리고 뭉개왔던 문제들이 에누리 없이 정직하게 튀어나오는 중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규정상 37.5℃ 이상 발열, 기침, 근육통, 두통, 인후통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 중 하나라도 있는 학생은 등교를 ‘중지’당하는데, 그렇다면 기초체온이 높거나 만성두통, 만성기침이 있는 학생은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매번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지 않는 한 영영 학교를 못 가나요?”(의사로부터 기저질환 소견서를 받아오면 등교가 가능하다고 하지만 책임 소재 때문에 대부분의 의사들이 소견서 내주기를 꺼린다.)

#AD156862252649.ad-template { margin:auto; position:relative; display:block; clear:both; z-index:1; } #AD156862252649.ad-template .col { text-align:center; } #AD156862252649.ad-template .col .ad-view { position:relative; }

 

“저학년 돌봄 문제 때문에 초등 1, 2학년을 더 빨리 등교시킨다고 했지만 정작 등교 개학이 시작되면서 많은 학교들에서 긴급 돌봄 운영을 끝냈습니다. 학교 가는 날은 주 1~2일뿐인데 나머지 원격 수업 날에는 맞벌이 자녀들이 갈 곳이 없어 학부모가 일을 그만둬야 할 지경입니다.”(교육부는 모든 학교에서 긴급 돌봄 운영을 유지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 등의 문제 때문에 제대로 진행하지 못하는 곳이 여전히 많다.)

“수업시간은 그렇다 치더라도 쉬는 시간에 학생들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가능할까요?”(그래서 대부분의 학교들이 쉬는 시간, 중간놀이 시간을 없앴다.)

“기존대로 급식을 진행하면 감염 위험이 너무 높아지지 않을까요?”(그래서 어떤 학교는 급식을 아예 안 하거나 학부모에게 선택권을 주거나 혹은 빵, 떡, 주스 등의 간편식(아래 사진 참조)으로 대체했다.)

ⓒ오마이뉴스 제공대구 지역 학교에서 제공한 간편식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대구 D초등학교 급식, 대구 E중학교 급식, 대구 C초등학교 급식, 대구 A초등학교 급식.

 

“숨 막히는 마스크를 쓰고 대화 금지, 토론 금지, 접촉 금지의 학교에서 칠판만 바라보는 수업을 하느니 차라리 집에서 온라인 수업만 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지 않나요?”(많은 교사들이 조심스럽게 다양한 수업 활동을 기획해보다가도 ‘책임질 일이 생기면 어쩌나’라는 우려 때문에 포기했다.)

교육부, 교육청, 학교, 교사의 전화기에 이런 질문들이 문의·민원·항의 형태로 불이 나게 쏟아졌다. 그 누구도 명쾌한 답을 전해주지 못했다.

이런 혼란이, 부딪치고 풀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정답으로 향해가는 시행착오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 학교 현장에서 터져 나오는 딜레마들은 말 그대로 ‘답이 없다’. 상황은 현기증 나게 유동적이고 모두가 난생처음 이런 일을 겪는 데다가 시간이 흐른다고 더 나아진다는 보장조차 없다. 가장 골치 아픈 점은, 등교 수업에서 불거지는 딜레마의 양상이 두 가지 양보할 수 없는 우리 사회 핵심 가치의 충돌이라는 사실이다. 바로 ‘방역(안전)’과 ‘학습권(배움)’이다.

■ 방역과 학습 두 마리 토끼는 못 잡는다

교육부는 6월을 ‘등교 수업 지원의 달’로 삼고 그 목표를 이렇게 정했다.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 병행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고, 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안전과 학습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한 문장 속에 병렬로 배치된 ‘안전’과 ‘학습’은 서로를 배반한다. ‘오프라인 학교에선 온라인 수업이나 학원에서 얻을 수 없는 배움이 일어나야 한다’와 ‘학교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안 된다’라는 당연하고도 중요한 두 원칙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이, 지금은 사실상 ‘미션 임파서블’에 가깝다. 또한 둘은 상충하는 가치다. 배움의 수준을 높이려면 방역이 위협받는다. 방역의 수준을 높이려면 다양한 배움 활동이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극단적인 배움의 추구는 팬데믹 현실에 눈감는 일이고, 극단적인 방역의 추구는 ‘왜 굳이 학교에 나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시사IN 조남진6월2일 오전 인천의 한 가정에서 초등학생들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가 될 수 없는 ‘방역’과 ‘배움’에 아직 우리 사회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5월8일 등교 개학을 앞둔 한 고등학교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말했다. “이제 학교가 방역의 최전선입니다. 단 한 명의 감염도 막겠다는 마음으로 모두 힘을 합쳐 안전한 학교생활을 만들어갑시다.” 6월1일 박종훈 경남교육감은 “단 한 명의 학생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해주기 바란다”라고, 5월20일 조희연 교육감은 “학교 구성원들이 방역과 학업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희망의 메시지가 주는 이점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무엇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선 안 된다’는 전제가 주는 고통도 만만치 않다. 코로나19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하면서도 학생을 성장시키는 배움이 일어나는 학교가 존재할 것처럼 얘기하는 순간, 학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모든 혼란은 이해관계에 의한 소소한 갈등이나 여차저차 개선 가능한 시행착오 정도로 축소돼버린다. 실제로는 그 혼란이 ‘이대로의 공교육이 지속 가능한가’를 묻는 치명적 징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학교에서 완벽한 방역이 불가능한 까닭

학교는 왜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이 될 수 없나.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교는 코로나19 방역의 최전선이다’라는 문장에서 받는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이상은 전 국민의 자유와 평등이라는 말 같네요.” 추구하는 이상은 될 수 있으나 현실이 될 수 없는 그 명제가 교육부의 ‘유·초·중등 및 특수학교 코로나19 감염예방 관리지침’과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 시스템’ 속에서는 형형하게 살아 있다. 조금이라도 의심 증상이 나타나는 학생과 교직원은 학교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돼 있다. 구성원 간 ‘철저하게’ 거리두기를 하고 수업 중 증상이 나타난 학생은 ‘지체 없이’ 선별진료소로 이동하며 마스크, 손세정제, 종이타월 등 위생물품이 늘 ‘충분히’ 비치돼 있는 곳이 매뉴얼 속 학교의 모습이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교사는 매일 아침 학생 건강상태 자가진단 실행률을 체크하지만 학교에 가고 싶거나 보내고 싶은 학생과 학부모의 자의적 답변까지 알아챌 수 없다. 발열 체크에서 걸러지지 않는 의심 환자는 학교에 상시 존재할 수 있다. 많은 교사들은 또 ‘갑자기 우리 반 학생이 열이 나고 증상을 보였을 때’ 행동 시나리오를 두고 혼란스러워한다. ‘안전한 장소에서 대기하다가 지체 없이 선별진료소로 이동’은 매뉴얼 속에서나 가능할 뿐 실제로는 그 일을 실행할 시간, 인력,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방역물품도 갖춰져 있지만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다. “샀어요, 사긴 샀는데 쓰지 말라고 해요. 앞으로 상황이 길어지고 예산은 끝없이 내려오지 않을 거니 최대한 비축해놓아야 한다고요. 마스크도 학생들이 잃어버리거나 안 갖고 오면 주기는 주되 빌려주는 걸로, 다음 날 집에서 갖고 와 채워 넣으라고 하더라고요(경기도 A 중학교 교사).”

게다가 이 모든 지침은 엄밀히 말하면 ‘정규 일과 중 학교의 공간과 시간’에만 해당된다. 등교 개학이 시작되기 전부터 운영되던 오전 긴급 돌봄(원격 학습지원) 시간과 방과 후 돌봄교실 시간은 사실상 학교 방역의 사각지대다. 학생은 건강상태 자가진단 없이도 돌봄교실에 입장이 가능하고 뚜렷한 발열이 아니고서는 참여를 막을 근거도 마땅치 않다. 거칠게 말하면, 기침 콧물이 날 때 초등학생이 등교 수업 날 자기 학급을 찾아가는 건 안 되지만 돌봄교실에 머무르는 건 된다. 돌봄에선 여러 학급, 여러 학년 학생들이 또 뒤섞인다. 돌봄 수요가 높은 학교는 좁은 돌봄 교실 내 ‘거리두기’도 무너진다. 이를 막고자 경미한 기침, 콧물, 두통, 인후통 증세가 나타난 모든 학생의 돌봄 이용을 막으면 학부모가 일터에 나갈 수 있는 날이 얼마 되지 못한다.

ⓒ시사IN 신선영코로나19로 학교 곳곳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서울시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시간제 돌봄전담사는 말했다. “자가진단 체크를 포함한 모든 교육청 지침이 우리하고는 상관없다. 아프면 등교하지 말라지만 돌봄은 그냥 다 온다. 맡길 곳이 없어 돌봄에 보냈을 텐데, 직장에서 일하는 학부모에게 연락해 ‘아이가 지금 콧물 좀 나니 데려가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분반 수업이니 격일 등교니 해도 어차피 돌봄에서 아이들은 다 섞인다. 한마디로 주먹구구식이다. 의미가 없다.” 한번은 돌봄교실 한 학생이 갑자기 고열이 나고 기침을 심하게 해서 부모에게 연락을 했다. 저학년 아이를 빈 공간에 혼자 격리해둘 수도 없고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섞어놓을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돌봄전담사 곁에 앉혀놓고 학부모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돌봄전담사가 몸이 아플 때는 어떻게 하는지 매뉴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 거 없다. 그냥 ‘학교에 물의를 일으키지 마라’는 지침만 전달받았다. 그냥 아무도 코로나19에 안 걸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특수학교에도 똑같은 학교 방역 지침이 내려왔다. 밀접접촉 금지, 전원 마스크 착용, 화장실 혼자 가기 등 애초 지킬 수 없는 것들이 대다수다. 한 특수학교 교사는 말했다. “지금도 매일 제가 일일이 밥 떠먹이고 화장실 따라가서 용변 처리를 도와주고 있어요. 밀접접촉이 안 일어날 수 없어요. 감각이 예민해서 아예 마스크 착용이 안 되는 친구들도 있고요. 우리 학생들은 또 고위험군이기도 해서 매일 조마조마해요.”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선의로 움직여도 안 되는 일들이 있다. 학교에서 코로나19를 원천 차단하는 일이 그중 하나다.

■ 체육 시간에 뛸 수 없고 음악 시간에 노래할 수 없는 학교

‘완벽한 방역’은 불가능하지만, ‘추구’할 수 있는 가치다. 이 추구가 학교에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학교에 가면 제대로 배워야 의미가 있는데, 방역을 추구하면서는 다양하고 풍부한 배움 활동을 함께 추구할 수가 없다. 배움은 국·영·수 지식 전달 수업에서도 일어나지만 등하굣길 친구와의 수다, 쉬는 시간 술래잡기, 점심시간 식사 지도, 방과 후 운동장 놀이에서 더 강렬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지금은 모두 금지된 활동이다.

수업조차도 이제 일방향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이준수 초등학교 교사는 말했다. “코로나 이전 초등학교 교실은 ㄷ자 책상 배열이 기본이었다. 대부분 교과 활동도 모둠 활동으로 진행했다. 모든 책상을 칠판 방향으로 돌려서 나란히 둘 때는 단원평가를 치를 때밖에 없었는데 이제 그 ‘시험 대형’으로밖에 수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됐다.” 배움의 핵심 요소인 ‘피드백’도 비말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제한됐다. “어떤 선생님들은 대답하는 대신 ‘이해되면 손가락 하나, ‘이해가 안 되면 손가락 다섯 개를 들어라’며 수신호 피드백을 생각하기도 하던데, 마스크로 표정도 반 이상 가려진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음성 반응과 대답까지 없다고 생각하면 도대체 대면 수업의 장점을 어디에서 찾아가야 할지 고민이 크다.”

예체능 과목 학습은 올해 사실상 접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체육 시간에는 더운 날씨에 마스크를 써도 숨차지 않으면서 운동이 되는 신체 활동을 찾아내야 한다. 이론 수업과 몇 가지 ‘표현’ 활동만 살아남고 대부분의 ‘경쟁’ 활동은 언감생심이다. 음악 수업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노래 금지, 리코더 금지, 공용 악기 사용금지다. 김지수 중학교 음악 교사는 말했다. “할 수 있는 건 감상 수업밖에 없어요. 수행평가도 음악 듣고 제목을 맞힌다든가 하는 식으로밖에 못하고요. 정말 말도 안 되죠.”

 

ⓒ시사IN 신선영6월3일 서울 중앙고등학교에서 코로나19 검사가 워크스루(walkthrough)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특히 초등학교 1학년을 바라보는 교사들의 마음이 복잡하다. 한 초등 교사의 말이다. “학교를 너무 재미없고 힘든 곳으로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은 새로운 규칙과 공간에 적응하고 선생님, 친구들과 친해지면서 학교의 즐거움과 새로움을 배우는 황금 시간이다. 교사가 아무리 교육철학이 있어도 일단은 아이들을 ‘살려서’ 하교시키는 게 1차 목표다 보니 처음 학교 발 디딘 아이들에게 하루 종일 ‘양팔, 양팔(간격)’ ‘마스크 끼세요’ ‘말하지 마세요’ 이런 말만 반복해야 되니 자괴감이 든다. ‘거리두기 잘 지키나’ 하고 바라보는 시선도 사실상 감시에 가까운 것 같고. 이 모든 게 너무 비교육적이다.”

최대한 안전을 지키면서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을 조금씩 시도하면 안 될까? 학교 관계자들은 이런 질문에 손사래를 친다. “어휴, 큰일 날 소리 마세요. 그러다 문제가 발생하면 학교나 교사가 다 책임지게요?” 결국 ‘안전빵’이다. 한 초등 교사는 학교 회의에서 합의한 내용을 전해줬다. “온라인 수업, 등교 수업, 방역 세 가지를 함께 이뤄내야 하는 상황에서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으니 하나만 열심히 하자고 했는데, 그게 방역이다. 일단 우리 학교에 나온 아이들이 안 아픈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알찬 수업 같은 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교육부·교육청에서 강조하기도 하고.”

■ 자율? 경험은 없고 책임은 두렵다

두 가지 중요한 가치가 충돌할 때 보통 꾀하는 것은 ‘조화’이다. 방역과 학습 두 가지 모두를 포기할 수 없다면 둘 다 조금씩 양보해서 적정 수준의 위험과 손해를 감내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2주간 하루 평균 확진자 수가 50명을 넘길 때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전환하지 않고 ‘생활 속 거리두기’를 유지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그런 조화라면 조화일 수 있다.

학교 등교 수업에 대해서는 그런 ‘적정 수준’에 대한 결정도 합의도 이루어진 바가 없다. 정해진 것이라곤 하루에 등교하는 학생 수를 3분의 1 혹은 3분의 2 이하로 유지하라는 지침, 그리고 확진자가 한 명이라도 나오면 학교 문을 일정 기간 무조건 닫는다는 원칙 정도이다.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 학교는 그럼 영영 문을 못 여나? 그러면 수업일수는 어떻게 채우지? 시험, 대입 전형은 어떻게 하고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는 어찌할 것인지? 수업일수를 조금 축소하고 수능 일정을 한 달가량 미루는 것으로는 앞으로의 불확실성에 대비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학교가 유지하고 있는 원칙과 규정은 아직도 다소 한가롭다.

어느 선이 방역과 학습의 적정 조화 수준인지 아무도 답을 내놓지 못하는 가운데 교육부는 몇 가지 대원칙 외에 세부 사항은 모두 시도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 자율로 결정하라고 넘겼다. 전무후무한 ‘권한 이양’이었다. 교육 자치를 두고 상급 기관과 이런저런 갈등을 벌여온 역사가 유구하지만 재난 시기 날아든 자율은 교육청과 일선 학교들에게 뜨거운 공 같았다. 교육청은 학교에 공을 넘겼고 학교는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을 넘겼다. 모두가 ‘권한 이양’에 따른 ‘책임 이양’을 두려워한 결과다.

ⓒ시사IN 신선영6월9일 세종시 소담초등학교에서 학부모 자원봉사자가 학생들의 원격수업을 돕고 있다.

결국 대부분의 등교 수업 방안은 학부모 설문조사로 이뤄졌다. 주 2회 등교할지 3회 할지 매일 할지, 학년별로 나눌지 학급별로 나눌지 한 반 학생을 홀짝 번호로 쪼개 등교할지, 월·화·수 등교할지 수·목·금 등교할지 월·목·금 등교할지, 등교 시간을 저-중-고학년 순서로 할지 고-중-저학년 순서로 할지 학부모는 알리미 앱에서 쏟아지는 설문 문항에 허겁지겁 체크를 하고 학교는 다수결에 따라 운영 방침을 정했다. 정 학교 오기가 두려운 학생들은 교외체험학습 가능 일수를 늘려줄 테니 선택하라고 했다.

많은 학교 구성원들이 절감했다. 학교는 개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의사결정의 경험이 너무나도 일천했다. 대부분 학교 현장 속에서 ‘자율’은 야간자율학습에나 담겨 있을 뿐이고, ‘책임’은 최대한 몸 사리며 피해가야 할 폭탄 같은 거였다. 이윤승 고등학교 교사는 말했다. “방역 전문가가 아닌데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 쌓여 있으니 모두가 갈팡질팡해요. ‘이거 질병관리본부가 판단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가 결정해도 되나? 잘못되면 내 책임인가?’ 결국 판단이 막히면 그러죠. ‘하던 대로 하자’ 혹은 ‘옆 학교에서는 어떻게 한대?’” 다른 고등학교 교사는 기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금 학교의 상황을 언론사 데스킹 과정에 빗대 설명했다. “〈시사IN〉에 평소 기사를 써오면 하나도 마음대로 못 나가게 꼬치꼬치 다 따지며 고치고 지적하는 데스크가 있었다고 생각해봐요. 그러던 데스크가 갑자기 일선 기자가 위험한 기삿거리를 하나 물어오자 ‘난 몰라, 네가 알아서 써, 난 데스킹 안 봐’ 이런 형국인 거죠. 기자가 용감하게 기사를 쓸 수 있겠어요?”

책임을 두려워하는 교원들을 안심시키려 교육계 수장들은 면책 선언을 내놓았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고의와 중과실이 없다면 교사의 코로나19 관련 업무는 적극행정면책이 되도록 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세종시 최교진 교육감은 관내 교직원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매뉴얼이 미처 채우지 못하고 있는 공백을 교육공동체의 자율적인 판단으로 채워주십시오. 과감하게 판단하고 신속하게 대처해주십시오. 그에 따른 책임은 교육청이, 아니 교육감이 지겠습니다. 교직원 여러분께서 방역의 주체가 되어주시면 교육감은 방역의 책임자가 되겠습니다.”

하지만 교원들의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는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물었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는 말이 정치적 수사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극단적으로 학생이 학교에서 코로나19에 걸려 사망했다고 했을 때, 학부모나 사회는 정말 교사와 학교에 책임을 묻지 않을까? 법적책임에서도 정말 자유로울까?” 지난 5월 “학교 내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해당 학교를 엄중 문책할 예정”임을 밝혔다가 논란을 일으킨 부산시교육청의 공문(추후 공문을 수정하고 학교들에게 사과 메일을 보냈다) 사태 같은 일들을 보고 일선 교원들은 이런 심증을 확신으로 굳힌다.

■ 방역과 학습 조화가 일어나는 학교, 이것이 달랐다

학교들은 위기가 발생하자 두 갈래로 갈렸다. 서로 떠넘기고 눈치 보다 원래 하던 대로 혹은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학교, 권한과 책임을 나눠 지고 자발적 참여에 따라 구성원 간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이끌어낸 학교.

차이는 민주주의의 경험이었다. 코로나19 이전부터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 작동하던 학교들은 갑자기 늘어난 업무와 책임, 끊임없이 발생하는 돌발변수에 비교적 유연하게 대처했다. 발생한 문제를 두고 비난 대상을 찾기보다 해결 방법에 집중했다. 서로가 자발적으로 할 일을 찾고, 내 일 네 일 나누지 않고, 시행착오가 생겨도 서로가 서로를 탓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학교 내 민주주의가 알고 보니 감염병 위기를 버티는 학교의 기초체력이었다.

세종시 소담초등학교가 좋은 사례다. 이 학교는 5년 전부터 ‘민주주의 경험’을 쌓아왔다. 학생·학부모·교직원 3주체 연석회의를 한 달에 한 번씩 열어 현안을 공유하고 사업을 기획하고 예산을 편성했다. ‘쓰레기통을 좀 더 곳곳에 설치해달라’ ‘왜 실내화 색깔이 꼭 하얀색이어야 하나’라는 학생 의견도 논의되고 반영되었다. 교무실에서 함께 자장면을 시켜 먹다가 급히 결성된 ‘소담초 아버지회’도 학교의 일손과 고민을 나눠 맡았다. 학교는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 때문에 대개 꽁꽁 닫아놓기 마련인 강당과 운동장을, 그것도 주말에, 벼룩시장과 음악회 같은 마을공동체 행사에 열어주기도 했다.

ⓒ간디학교 제공경남 산청군 간디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거리를 두고 요가 수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굴러가던 학교 민주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코로나19 같은 위기도 비교적 빠르고 유연하게 대처해낼 수 있었다. 소담초 김현진 교사는 “어떤 의사결정을 해도 빈 구멍이 있는데 여러 지역, 학부모 공동체가 그걸 메우려고 애를 썼다. 학교에 ‘왜 이런 거 안 해줘?’ ‘남들은 이렇다는데 왜 우리만 이래?’라기보다 ‘혹시 이 부분에서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뭘까?’라고 함께 고민해줬다.” 다른 많은 학교들에서 인력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던 방역, 긴급 돌봄, 원격 학습 지원 도우미도 지역·학부모 공동체의 자원으로 수월하게 메울 수 있었다.

소담초 학부모 임진희씨는 “직접 회의에 참여하고 학교 내 방역이 이뤄지는 과정을 듣고 직접 보기도 하니까 오히려 마음이 놓이고 ‘학교가 최선을 다하고 있구나, 학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신뢰 안에서 교사들은 조금은 자신감을 갖고 교수 활동을 펼쳐나갔다. 최대한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할 수 있는 야외 나들이 수업을 궁리하고 감정 카드로 아이들의 내면을 다독여주는 프로젝트 수업도 기획해봤다. 온라인 수업을 잘 따라가기 힘든 학생들을 학교로 불러 개별 지도하기도 한다.

경남 산청군의 대안 특성화 고등학교인 간디학교도 기존에 작동하던 민주주의 구조 속에서 방역과 학습의 조화를 최대한 꾀해보는 중이다. 운동장에서 거리를 두고 요가 수업을 진행하고, 축구·제빵 등 동아리 활동들도 무조건 막기보다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가능토록 지원해주기로 했다. ‘이동 학습’이라 불리는 1학년 여행 수업을 없애는 대신 당일치기 지리산 종주 같은 대안 프로그램으로 바꿨다. 매년 진행하던 해외 봉사활동은 근처 어린이학교 벽화 그리기로라도 대체하면서 그 취지와 정신을 살려나갈 계획이다. 식구총회, 월요일 ‘주를 여는 시간’ 같은 자리를 통해 학교 구성원 모두가 이런 결정과 판단에 참여하는 구조가 익숙하고 자연스럽다.

함께 고심하고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불신과 두려움을 없앤다. 간디학교 박종훈 교사는 “만약 학교 안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유별나게 굴다 걸렸지’ 하며 밖에서 욕을 들을지언정 학교 구성원끼리는 서로 비난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함께 결정하고 지탱하는 구조 속에서 문제가 생겨도 함께 헤쳐나갈 거라고 서로가 서로를 믿는다”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이를 “책임에 관해 외롭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 학교의 존재 의미를 다시 찾아내야 하는 시간

학생이 아침에 눈을 떠 책가방을 메고 학교에 가게 만드는 동력은 각자가 매일 다 달랐다. 졸업장을 따러, 대학에 가야 하니까, 교과 수업이 재미있어서, 중간놀이 시간 친구와 딱지치기 하러, 음악 시간 합창 연습이 기대돼서, 점심시간에 좋아하는 친구와 나란히 앉아 밥 먹으려고, 방과 후 바둑 수업이 즐거워서, 돌봄교실 간식이 맛있어서…. 이와 같은 수많은 이유 가운데, 코로나19 이후에도 살아남은 학교의 존재 의미는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출석, 시험, 입시, 진도 정도가 겨우 살아남았다.

여기에 한두 개씩이라도 더, 학생이 학교에 갈 이유를 추가해가는 과정이 코로나19 시대 공교육의 목표일 수 있다. ‘굳이 학교를 왜 가야 하나?’라는, 존재하고는 있었지만 보편적이지 않았던 질문이 이제 피할 수 없는 공교육의 핵심 의제가 되었다. 정면으로 그 질문을 맞닥뜨리고 치열하게 답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그 지난한 과정에서 방역과 학습, 안전과 배움의 적정 균형을 찾는 일 또한 피할 수 없다. 그래야 교육이 멈추지 않는다. 또한 그 일은 교육부, 교육청, 교사, 학부모, 학생과 동시에 학교 안팎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