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소유 시대의 종말, 얼마나 동의하십니까?
김진석 입력 2019.04.17 15:06

[김진석의 라스트 마일] 자율주행 자동차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직은 먼 미래의 개념으로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정말 자율주행차 상용화가 현실화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양산차들에 적용되고 있는 각종 ADAS 기술의 완성도나 자율주행을 선도하는 웨이모와 같은 기업들을 보면 정말 많은 전문가가 예측하는 대로 2025년 즈음에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다니는 세상을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자율주행차의 상용화가 다가오면서 자율주행 시대에 어떤 변화가 닥칠지에 대해 다양한 전망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자율 주행 시대에는 개인이 차를 구매하지 않고, 구독만 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전망입니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개인이 차를 사는 일이 없어질 것이라는 주장의 그림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영업용) 자율주행차는 계속해서 가동할수록 더 높은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주차되어 있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고, 가동률이 높아질수록 더 효율적이기 때문에 1회 당 이용 비용은 내려가게 됩니다. 이동 비용이 굉장히 저렴해지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더는 차를 구매할 필요가 없어지고 이동을 “구독"하리라는 것이 이러한 주장의 주요 근거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율주행차를 대량으로 구매하고 운영하는 모빌리티 플랫폼 기업들이 지금의 자동차 제조사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고요.

여기서 더 나아가면 모빌리티 플랫폼은 이동 중에는 사용자의 시간과 공간을 독점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서비스들과 제휴할 수 있고 이 제휴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다양한 부가 혜택을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유튜브 콘텐츠를 광고를 보는 대신 공짜로 이용하는 것처럼 이동 중 광고를 시청하는 대신 무료로 이동하는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분명 현실성 있는 근거에 기반을 둔 주장이며, 이러한 예측은 매우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서 그리는 미래가 현실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동차를 소유하는 일은 정말로 의미가 없을까요? 이는 더 깊게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자율주행 시대를 다시 얘기하면 운전에 필요한 인건비가 사라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됐을 때의 현실을 예측하는 것은 택시비가 지금보다 매우 저렴해진다면 어떻게 될지를 상상해보는 것과 일맥상통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현재 택시 운송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입니다. 자율 주행으로 인해 이 인건비가 0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택시 운송 원가는 지금보다 굉장히 낮아질 것입니다. 또한, 사고가 줄어들 테니 보험료나 사고 보상비도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것입니다. 물론 자율주행차의 구매 가격은 지금의 택시보다 더 비쌀 것이며, 연료비는 지금과 비슷하게 들겠지만요.
자율주행차의 높은 구매 가격은 효율화된 운영으로 일정 부분 상쇄된다고 가정해 무인 택시비가 지금의 30%~40% 수준으로 줄어든다고 봤을 때 사람들은 과연 더는 차를 타지 않고 택시만 타고 다니게 될까요?
이렇게 생각해 봤을 때 저는 그래도 차를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실 지금도 따져보면 택시만 타고 다니는 것이 차를 소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차를 사는 것은 내가 독점적으로 즉시 이용할 수 있는 이동 수단이 주는 편리함 때문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택시를 타려면 큰길로 나가서 차를 잡거나 앱을 통해서 차를 불러야 합니다. 두 가지 경우 모두 차를 탑승하기까지 어쩔 수 없는 시간적, 공간적 버퍼가 존재합니다. 이는 자율주행이 고도화되더라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반면 차를 소유하고 있으면 주차한 곳으로 이동하기만 하면 곧바로 이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쇼핑하러 갈 때 택시 타고 가는 것보다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편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저만 그런가요?)

또 한 가지는 차를 사는 이유가 “이동”에만 있는 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구매함으로써 우리는 독점적인 “공간"을 구매하게 됩니다. 공간에 대한 배타적 소유욕은 인간의 오래된 욕구입니다. 자동차를 구매함으로써 우리는 마음대로 짐을 적재하고, 혹은 온전히 개인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을 소유하게 됩니다. 자율주행차 시대에 대한 논의 대부분은 자동차가 주차장에 머물러 있는 시간을 낭비로만 보는 경향이 강한데 자동차가 주차장에서 정차하고 있을 때도 이 공간으로서의 가치는 여전하므로 자원의 낭비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자율주행차 시대가 되면 자율주행 택시 이용의 편익이 올라가는 점도 있지만, 마찬가지로 자동차 소유로 인한 편익도 증가하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자율주행 시대가 되면 택시 탑승 비용이 30~40%로 줄어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용 운전기사를 고용하는 비용이 0에 수렴하게 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즉시성과 공간이 주는 편익을 고려하면 누군가에게는 택시 탑승 비용이 파격적으로 줄어드는 것보다 (다소 값비싼 구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운전기사를 무료로 고용할 수 있는 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오해를 막기 위해 명확하게 제 견해를 밝히자면 저도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지금처럼 차를 소유하는 것이 당연시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소유보다는 구독의 편익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테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소유가 종말을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원래 새로운 혁신 서비스가 힘든 것은 관성의 동물인 사람의 행동을 바꾸는 것이 가장 힘들기 때문입니다. 물론 임계점을 넘어서면 확 쏠리기도 하므로 지금으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편익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모두 언제 차를 샀느냐는 듯 변할 수도 있겠지만요. (약 10~15년 전만 해도 걸어 다니면서 인터넷 해서 뭐하냐고 하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행동의 관성뿐 아니라 엔터테이먼트로서 운전을 즐기는 수요는 자율주행 시대에도 계속해서 존재할 것까지 고려하면 미래에 대한 예측은 더욱 복잡해집니다.

10년 후 우리의 모빌리티 생활은 어떤 모습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어쩌면 2025년 즈음에는 자동차 소유의 시대에 종말이 와 이 글이 제 흑역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2019년만 하더라도 이런 생각도 존재했다는 걸 보여주는 데서 의의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진석
김진석 칼럼니스트 : 국내 자동차 제조사에서 마케팅을 담당했으며, 승차 공유 스타트업에서 사업 기획을 담당했다. 자동차 컨텐츠 채널 <카레시피>를 운영하며 칼럼을 기고하는 등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과 모빌리티 영역을 폭넓게 아우르며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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