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제정세 칼럼

남북 경제협력, 세상에 없던 모델을 만들어야 - 인권에 무지한 북한 인권 전문가

일취월장7 2018. 5. 18. 12:07

남북 경제협력, 세상에 없던 모델을 만들어야

[현안진단] 신한반도 경제구상과 새로운 상생 협력의 길
2018.05.16 18:30:58


신한반도 경제구상의 의미

한반도 미래 운명의 가늠자가 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를 내세워 미국과 담판을 짓고자 하는 근본적 이유는 결국 경제문제에 있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간접적으로 북한경제의 낙후성을 토로하기도 했다.

북한은 5월23일부터 25일 사이에 외국 기자단이 참관하는 가운데 핵실험장을 폐쇄하기로 했고,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북한 핵무기를 폐기해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가져갈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 문제 해결에 청신호가 켜졌다.

미국의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이 과거 핵을 외부로 내보낼 경우 미국 기업들의 대북 투자를 허용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북한판 마셜플랜'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둘러싼 경제환경에 큰 변화가 예고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이던 2014년부터 이미 '신한반도 경제지도'를 주창해 왔다. 그리고 2017년 7월 독일 쾨르버 재단 초청 연설에서는 '베를린 구상'을 내놓았다. 이 연설의 근간은 신한반도 경제구상이다. 한반도의 긴장과 대치국면을 근본적으로 전환해 남북한이 함께 경제 번영을 누리자는 내용이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몇 가지 근원적 차이가 있다.  

먼저 평화를 우선한다. 과거에는 경제교류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를 만들어 나가자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우선 평화부터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교류 협력을 해 나가자는 것이다. 북한의 비핵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의 궤도는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는 작업이다. 

둘째는 상생이다. 과거에는 북한에 우선 지원하고 북한의 변화에 맞춰 경제교류를 확대해 나가자는 방식이었다. 변화를 거부하는 북한을 전제하고 반 강제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 스스로 변화하고 우리는 이를 지원하면서 함께 이익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단 이후 한국 경제는 삼면이 바다고 한 면은 절벽인 섬나라 아닌 섬나라라는 지정학적 환경에서 성장 발전해 왔다. 북한이 스스로 문을 열면 한국은 더 이상 섬나라가 아니며 대륙과 연결하는 거대한 시장을 겨냥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북한 경제는 기초를 다지고 경제성장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북한을 억지로 변화시켜 강제로 통합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북한 경제의 자생력을 강화하며, 북한이 자체적으로 경제발전을 구가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이러한 남북한의 상생을 기본으로 한다. 

셋째는 동북아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한다.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한만의 경협을 넘어 동북아 지역의 발전도 도모된다.  

북한은 동북아 지역의 블랙홀이었다.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력과 경제체제의 차이로 경제공동체를 꿈꾸지 못했던 점도 있지만, 북한이라는 블랙홀로 서로의 협력을 시도하기 어려웠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시발점을 한반도에서 만들어 가자는 것이다. 남북한의 8000만 시장을 넘어 동북아 5억 이상의 거대시장을 꿈꾼다. EU 경제 공동체는 동서독 분단 이후 서독의 아데나워 정부가 철강공동체를 내세워 서방국들과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수단으로 시작됐다. 독일 통일과 함께 유럽통합은 가속화됐고, 결국 유럽통합의 중심에 통일 독일이 자리매김하고 있다.  

평화시대의 틀에 맞는 상생의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 

북·미 양측의 의지와 진정성, 그리고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번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의 전망을 확실하게 해줄 긍정적 결과가 도출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는 남북한이 상생할 기회가 도래함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 가까이 막혔던 남북경협이 다시 풀릴 것이라는 기대로 부풀어 있다. 파주의 땅값이 들썩이고,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기대하는 기관과 기업, 민간부문들이 앞다퉈 온갖 대안들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 등 제3국에서는 북한 측과 사업 협의를 위한 접촉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그러나 모처럼 만에 찾아온 기회를 잘 살려 나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4.27 판문점 선언'에서 기존 남북 간의 합의를 준수하고, 우선적으로 연락사무소 개설, 이산가족 상봉 및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러한 사업들을 추진하고 또 확장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풀려야 한다. 물론 북미 정상회담이 긍정적인 결과를 낼 것이라 예상되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순차적으로 풀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남북 간에는 경제운영 방식에 근본적 차이가 있다는 점을 서로가 인정해야 한다. 북한이 하루아침에 시장경제를 받아들일 수도 없고, 남한은 북한의 시장경제 도입을 강요할 수만도 없다. 서로 다른 체제 간에 원활한 경제교류를 가능케 하는 완충 장치가 필요함을 의미한다.  

남북 간에는 이러한 문제에 원칙적 합의를 보았지만,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며, 시행착오도 빈번했다. 남북 간 교류와 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조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한반도에 종전선언과 평화체제 구축의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종전의 내국 간 거래를 지속할 수 있을지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북한에만 유리한 교역 조건을 허용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남북한의 내국 간 거래방식을 대체할 수 있는 협정 체결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또한, 경제교류는 자본의 이동이 필수이므로 금융거래 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초기 남북경제교류는 무역과 임가공 사업이 중심이 될 것인데, 대금결제를 위한 은행 간 신용장 개설이 안 되어 있다. 달러 기준으로 결제할 때 북한의 시장환율로 할지, 공식환율로 할지도 정해야 한다. 양 환율의 차이가 80배 이상 나기 때문이다.

인적교류를 위해 초청장 발급은 어떻게 할 것인지, 비자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기존과 같이 북한의 민경련이나 민화협을 통해야만 교류할 수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한 재협의가 필요하다. 이렇듯 지속성과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시스템을 재구축하는 일부터 우선해야 한다.  

북한의 경제개발에 남한의 자본과 노하우는 마중물이다. 하지만 남한이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과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북한 경제개발의 주체는 북한이다.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는데 남한의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는 있다.

남한은 북한 스스로 유무상의 차관을 도입하여 철도, 도로를 깔고 발전소를 건설하는데 도움을 주고, 필요하다면 자본 참여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남한의 해외 무역망을 북한이 이용할 수 있는 편의를 제공할 수도 있다.  

무분별한 대북지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인도적 지원으로 북한에 연탄을 제공한 사례가 있었는데 북한에는 연탄을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그래서 남한에서 지원한 연탄을 부숴서 자신들의 시스템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만드는 작업을 했다. 우리 기준의 대북지원이 아니라 북한 기준의 지원사업이 되어야 한다.

북한 개발의 주체는 북한이다 

북한은 개혁과 개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이미 추진하고 있다. 시장개혁은 '포전담당제'와 '사회주의기업경영책임제'로 대표된다. 시장의 개인자본도 국가사업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 5개의 경제특구와 22개의 경제개발구를 열어놓고 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은 사실상의 개혁과 개방을 위한 내부 준비를 해오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이 개혁·개방의 성과를 거두는데 홍콩 및 화교 자본에 대한 우대정책을 비롯하여 수많은 법과 제도, 시스템 구축을 했다는 점을 북한은 명심해야 한다. 중국만 하더라도 경제의 투명성을 유지하는데 수십 년의 시간이 걸렸다. 남한이 이를 대신할 수 없다. 북한 당국 스스로 이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경제제재만 풀리면 해외자본이 물밀 듯 들어올 것으로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해외자본이 북한에 들어올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은 북한 몫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변화를 거부해 왔고, 외부세계는 북한을 억지로 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에 북한 특수성이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 특수성은 오히려 북한이 해외자본을 유치하는데 걸림돌이 될 뿐이다. 외부의 변화 요구로부터 체제를 방어하기 위해 수많은 규제와 비관세 장벽을 만들어 왔지만, 이제 스스로 규제와 비관세 장벽을 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남북 경협은 물론 국제사회와의 경제협력을 위해 북한이 먼저 해야 할 일은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 일이다. 사회간접자본 확충에는 많은 자본이 필요한데 북한 스스로 자본을 조달해야 한다. 국제금융기구, 외국정부로부터 유무상의 차관을 도입하려면 북한의 신용이 좋아야 한다. 

초기에 북한의 신용도를 보완하는데 남한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남한의 자본을 마중물로 하여 국제자본을 유치하는데 활용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남한의 전문가들과 각종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북한이다.

북한은 그동안 무상으로 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지속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북한은 변화를 생각하지 않고 국제사회는 무상지원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이 스스로 변화를 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른 보상이 수반되겠지만, 북한의 경제개발 모델을 상품 가치가 높은 사업으로 만들어야 한다.

개성공단 사례를 보면 북한은 남한 기업들에게 특별히 돈벌이를 할 수 있도록 땅과 인력을 제공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개성공단 개발 자체를 남한 자금으로 했다. 그러나 다른 특구 지역들은 다르다. 자본은 개방을 거부하고 차단막을 높이 치는 곳에는 가지 않는다. 남한은 북한에서 요구한다면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지만, 공단 개발을 남한 자본에 의존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신한반도 경제구상은 남북한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다. 모처럼 만들어진 상생의 기회를 적극적으로 살려 나가는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남이나 북이나 지금까지의 사고에서 벗어나 상생과 민족 전체의 번영을 위한 지속 가능한 협력을 모색해야 한다. 평화의 과실을 효과적으로 따먹기 위해서 남북한은 평화의 나무를 건강하게 키워 나가야 한다. 다시 한번 "급하게 먹는 밥은 체한다"는 말을 강조하고 싶다. 



인권에 무지한 북한 인권 전문가

문정우 기자 woo@sisain.co.kr 2018년 05월 17일 목요일 제556호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기자질을 한 지 벌써 33년이 넘었다. 그동안 부끄러운 글을 쓴 게 어디 한두 번일까마는 가능하다면 데이터베이스마다 들어가 꼭 지워버리고 싶은 기사가 하나 있다.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을 인터뷰한 글이다. 전 직장에서는 매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라는 특집을 내보냈는데 나는 이 기획이 싫었다. 너무나 뻔한 현재 권력 구도를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는 언론 분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 자리를 항상 같은 인물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바로 <조선일보> 김대중 주필이다.

나는 김대중 주필이 매년 독보적으로 1위에 오르는 까닭을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의 글 종착지가 결국에는 멸공·친미· 반민주화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그의 글을 편집한다면 고쳐주고 싶은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닐 만큼 비약이 심하고 비논리적이었던 까닭이다. 그래서 혹시라도 그를 인터뷰하라는 지시를 받을까 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특집을 쓸 때면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해 다녔는데 어느 한 해만은 선배에게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그때 그에게 정작 묻고 싶은 것들은 묻어두고 인터뷰를 ‘좋게’ 끝내고 말아 내내 찜찜함이 가슴속에 남았다. 당시 그가 류근일 논설위원실장과 서로 글을 바꿔 읽으며 고쳐준다는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류근일씨 역시 언론 부문 영향력 있는 인물 상위에 오르곤 했다.

공식 직함을 내려놓았고, 그리고 이미 손석희 JTBC 보도담당 사장뿐만 아니라 김어준씨에게마저 영향력 있는 인물 상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김씨와 류씨 두 사람은 지금도 여전히 왕성하게 글을 쓴다. 기자질을 한 지 50년은 족히 넘었을 두 사람이 아직 글을 쓴다는 점은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읽어주지도 않는지 갈수록 글의 힘이 떨어져만 간다는 게 문제다. 이분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권 교체,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의 국면 국면마다 헛발질을 해댔다. 자기들이 설정한, 실체가 없는 친북·좌파·반미 세력이라는 풍차를 향해 지치지도 않고 돌진하는 중이다. 이분들의 글을 끝까지 읽으려면 판타지 소설에 빠져들 때처럼 불신을 자발적으로 유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분들을 보면 신기한 점이 있다. 유독 북한의 인권 문제만 나오면 핏대를 올린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제주 4·3을 비롯한 한국전쟁 전후에 전국에서 자행된 양민 학살, 광주 5·18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 학살, 민주화 과정에서의 숱한 의문사와 고문 등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태는 외면하거나 심지어는 방어하는 태도를 보여온 분들이 아니던가. 제주도민이나 광주시민, 그리고 민주화를 열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글에서는 예사로 ‘폭도’라고 불린다. 물론 중동이나 아프리카, 러시아나 중국에서 벌어지는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이분들은 관심이 없다.

이들뿐만 아니라 북한의 인권 문제는 어느덧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나 어버이연합 같은, 인권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극우 집단의 전유물처럼 되어버렸다. 남북 화해를 추진해온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부터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 문제를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북한 인권 분야는 수상한 인물과 믿을 수 없는 정보가 유통되는 탁한 물이 되고 말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문재인 정부 때는 이 북한 인권 문제가 책임 있는 이들의 공적인 토론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북한에 공식적으로 제기하고 끊임없이 설득해나가야 할 중요한 안건이 되어야 마땅하다.

ⓒ한성원 그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은 북·미 관계의 개선을 위해, 나아가 북한이 정상 국가로서 순조롭게 국제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다. 북한과의 화해 국면에서 항상 미국 대통령과 참모들이 과감하게 한 발을 내딛지 못하고 망설였던 게 바로 이 문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파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가운데도 북한과 관련해 ‘절대로 나쁜 행동에 보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다. 그들은 미국 정부가 김정은 체제를 용인하면 더욱 많은 북한의 인민이 고통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북한은 인권 문제에 언제나 예민하게 반응해왔다. 북한에는 정치범 강제수용소나 교화소가 없고 일반 감옥만 있다는 게 공식 주장이다. 파격에 파격을 거듭한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의 이런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월29일 정세 논설에서 “인권의 불모지, 자유의 폐허 지대가 다름 아닌 미국이다”라며 선제공격을 했다. 정상회담을 앞두고 인권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하지만 미국 상원은 4월24일(현지 시각) 여야 만장일치로 북한 내부에 외부 세계의 정보를 주입하는 것을 강화시킨 북한인권법 재승인 법안을 통과시켰다. 북한은 인종차별, 총기에 의한 살인, 마리화나 남용까지 거론하며 미국이야말로 인권 탄압 국가라는 역공을 펴고 있지만 미국 내 북한 인권에 대한 여론은 악화될 대로 악화된 상태이다. 북한이 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하고 잔인하게 인권을 유린한다는 증언과 증거가 너무나 많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신뢰하기 힘든 탈북자나 관련 단체의 엽기적인 폭로는 제외한다 치더라도 북한의 인권은 참담한 수준이다. 국제변호사협회는 국제적으로 저명한 판사 패널 3명에게 탈북자 중 정치범 수용소 간수 출신, 죄수 등의 증언을 듣고 보고서를 써달라는 의뢰를 한 뒤 지난해 12월 그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살인, 노예화, 고문, 성폭력을 포함해 공인된 11개 전쟁범죄 중 10개를 저질렀다는 판결을 받았다. 유엔 국제사법재판소(ICJ) 판사를 지냈으며 아우슈비츠 생존자이기도 한 토머스 버겐설은 북한의 수용소가 자기가 젊은 시절 경험한 나치 수용소나 오랫동안 인권 분야에서 일하며 목격한 그 어떤 험악한 곳보다 더 나쁘다고 말했다. 아파르트헤이트를 겪었으며 국제범죄를 많이 다뤄본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 나비 필라이 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한마디로 북한은 전 국민이 협박을 당하는 상태라고 정리했다.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길목에 도사린 암초

국제변호사협회는 북한 인권 문제의 랜드마크가 된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에 자극을 받았다. 마이클 커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장에 따르면 유엔 보고서는 구소련의 저항 작가 솔제니친이 쓴 <수용소 군도>만큼이나 중요한 문건이다. 이 보고서는 4개의 거대한 정치범 수용소와 그보다 작은 교화소들이 북한 전역에 섬처럼 흩어져 있다는 사실을 처음 세상에 알렸다.

유엔 보고서를 바탕으로 한 국제변호사협회 조사에서 수용소의 의사 출신이 포함된 증인들은 배가 고파 쓰레기통을 뒤지다 처형된 사례를 포함해 중노동과 굶주림, 질병으로 사망한 숱한 죽음을 증언했다. 거꾸로 매달기, 전기 충격, 물 먹이기, 고춧가루 탄 물을 코에 붓기 등 군사독재 시절 우리에게도 익숙한 악랄한 고문 사례를 폭로했다. 많은 여성이 강간을 당했고, 그로 인해 임신해 강제 낙태를 당하다 죽음을 맞았다. 이 국제변호사협회 보고서는 “너무나 오랜 동안 북한 인민이 세계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게 무엇보다도 공포스러운 일”이라고 끝을 맺었다.

최근에는 수감자 형기가 정해져 있는, 정치범 수용소보다는 한 단계 급이 낮은 교화소의 정체도 위성사진을 통해 드러났다. 워싱턴에 본부를 둔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그레그 스칼라튜에 따르면 이 교화소는 북한 전역의 도시 외곽과 산중의 넓은 땅에 자리 잡고 있다. 시장에서 너무 많은 돈을 긁어모으는 것과 같은 심각한 경제 범죄나 북한을 탈출하려고 시도했던 이들이 대개 이곳에 갇힌다. 사람들은 거의 기아에 가까운 상태에서 감옥 내 채석장이나 광산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일한다. 평양 외곽 개천에 위치한 1번 교화소에는 여성 2000명을 포함한 6000명이 수감돼 있다. 위성사진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그곳에서 독성 물질에 노출된 상태로 가죽 제품을 만드는 중노동을 하고 있다. 정치범 수용소와 교화소 등에 수용된 인원은 적게는 8만명, 많게는 20만명이나 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만약 미투 운동을 벌인다면 북한 여성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일 것이다. 런던에 본부를 둔 민간단체 ‘코리아 퓨처 이니셔티브(Korea Future Initiative)’가 지난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발표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성폭력과 성희롱은 거의 국가적 전염병 수준이다. 강간이 감옥에서 고문의 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북한은 여성을 규제하는 법과 규범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이다. 남성들은 성폭력을 정상적인 행동으로 생각한다. 높은 지위에 있는 남성은 여성의 성을 힘으로 빼앗는 데 거리낌이 없다. 공포와 체념이 문화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여성은 입을 닫고 살아간다.

북한 인권 문제는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길목에 도사린 큰 암초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만약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서도 통 큰 결단을 내린다면 그를 정말 다시 보겠다. 인권변호사로서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경륜이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화해의 열기가 북한의 음습한 감옥에도 가닿을 수 있을까. 일단 인권에는 눈곱만큼도 관심이 없는 자들의 손아귀에서 이 문제를 빼앗아오는 게 순서다. 그들이 자기들에게 인권 문제를 단죄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게 어이없다.

참고한 활자: <북핵 롤러코스터>(시사IN북), <워싱턴포스트>, <이코노미스트>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김민웅의 인문정신] 미국의 북한 해체 전략 저지해야
2018.05.17 15:53:46

한반도 평화 위협, 원인 제공자 미국 

이미 날짜와 장소까지 잡힌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이 불안정한 상태를 노출하고 있다. 남북 고위급 회담이 북한의 대미(對美) 비난과 대남(對南) 불만 표명으로 취소되고, 북한과 미국 간의 회담도 불투명해질 우려가 생겼다. 원인은 단연코 미국의 대북 적대적 군사행동에 있다.

군사력 위주의 압박정책을 앞세우는 네오콘 세력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일방적 무장해제 모델인 리비아를 거론하면서 대북 압박을 연일 극대화하고 있다. 대북 대화 창구 확보에 노력해온 마이크 폼페오 국무장관과는 전혀 다른 자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른 척하면서 같은 시나리오를 짜고 움직이는 이른바 '악당 경찰(bad cop)'과 '착한 경찰(good cop)'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형국이다.  

'리비아 모델' 발언이 문제가 되자 백악관은 '트럼프 모델'을 내세워 시급히 진화했으나, 여전히 그에 따른 발언과 행동은 없다. 그런데다 평상시보다 공세적 강도를 높인 한미군사합동훈련 '맥스선더(Max Thunder)'는 4.27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를 정면으로 위협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 누가 어긴 것일까? 

미국의 대북 군사 압박 전략을 막지 못하고 도리어 합동훈련이라는 방식으로 합력한 한국 정부의 책임도 논란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남북 정상 간 서로 합의한 약속을 어긴 것이다. 이제 막 실무 합의를 하기로 한 순간에,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하지 않기로 한 지난 4.27 판문점 선언의 기본 정신과 실천 의지가 중대 기로에 처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호랑이가 산골을 넘던 엄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해놓고는 결국 다 뺏고 벗겨서 죽여 버린 우리의 민담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통일부는 북한의 남북 고위급 회담 취소 통보에 대해 "4월 27일 양 정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의 근본 정신과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유감"이라고 밝혔다. 이게 맞는 이야기인가.

압박하면 손든다? 

< 뉴욕타임스>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북한의 발표를 '위협(threat)'이라고 표현하면서 회담을 제안한 것은 북한이기 때문에 백악관 측은 성사되지 못해도 아쉬울 것 없다고 보도했다. 만일 그렇게 될 경우, 미국은 북한에 대해 "극대화된 압박(maximum pressure)"을 계속 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 오는 23~25일로 예정된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공개 폐기도 불확실해질 수 있다. 또한 폐기한다고 해도 그 의미가 왜소화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 미국 중앙정보국(CIA) 등은 북한이 핵실험장 폐기 이후에도 언제든 핵실험 능력을 복구할 수 있다며 북의 핵실험장 폐기 결정에 대한 의미를 깎아내리고 있다. 회담 일정이 다가올수록 대북 압박 강도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게 하는 대목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앞서 한 일간지에 기고한 글 일부를 다시 주목해본다.(☞ 관련 기사)  

"비핵화 논의는 북한의 전면적 무장해제를 의미하지 않으며, 미국의 군사적 압박의 존속과 유지를 뜻하지도 않는다. (중략) 미국이 평화협정에 적극성을 보이지도 않고 관계 정상화의 비전은 내놓지 않은 채 북한의 무장해제를 일방적으로 도모하거나, 핵 선제공격 전략을 계속 유지할 자세를 취한 채 협상에 임한다면 결과는 더 엄중해질 것이다. (중략) 북의 비핵화 못지않게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전면 철폐가 핵심이 된다."(4월 25일 자 <한겨레> '[왜냐면] 남북이 함께 북-미 관계 정상화의 다리를 만들자' 중)  

미국은 지금 이러한 우려대로 행동하고 있는 중이다.  

전쟁국가 미국의 본질은 '팍스 로마나'
 

미국이 쿠바와 필리핀을 무력 정복한 1898년 이래 제국주의 정책을 접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미국의 대외정책사 분야 권위자인 로이드 가드너(Lloyd Gardner)는 그의 책 <제국 아메리카(Imperial America)>에서 이러한 역사를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주의 체제를 집중 해부한 리처드 바넷(Richard Barnet) 역시도 <전쟁의 뿌리(Roots of War)>를 통해 미국 정부의 무력을 통한 제국 확장 전략을 파헤친 바 있다. 사실 전쟁국가로서의 미국의 본질은 미국 연구를 해온 이들에게는 하나의 상식이다.

이 같은 미국을 상대로 '평화 외교'를 시도한다는 것은 절대 간단치 않다. 평화는 이들에게 상대를 굴복시키고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의미하는 로마의 평화, 즉 '팍스 로마나(Pas Romana)'이다. 아니면, 평화는 이들에게 전쟁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안보국가-대기업 동맹체제(National Security State Corporate Complex)'에 대한 위협을 뜻한다. 폴 니츠가 1950년에 작성한 냉전 전략 지침서인 국가안보문건 'NSC-68'도 이런 동맹체제의 소산이었다. 따라서 상대를 완전 무장 해제시키고 이를 통해 국가 해체에 이르는 길을 확보할 수 있다면, 미국은 그걸 선택할 가능성이 언제나 높다. 이것이 약소국에 대한 제국의 외교 정책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마이클 패런티(Michael Parneti)는 책 <국가살해(To Kill a Nation)>를 통해 민간인 학살은 물론이고 정치와 경제 체제를 모조리 미국의 요구에 맞게 해체해버린 1992년 보스니아 전쟁 과정을 고발하고 있다. 이후 이라크, 리비아에 이 방식이 그대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다. 국제문제 탐사보도에 뛰어난 역량을 보이는 언론인 윌리엄 블럼(William Blum)이나 존 필저(John Pilger) 등이 명확히 규정했듯이 '불량 국가(rogue state)'는 다름 아닌 미국이다. 평화를 파괴하는 최강의 군사력을 영원히 독점하려는 나라 미국은 지금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국가폭력을 옹호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북한에 대한 일방적 무장해제, 항복 문서 조인인가? 

미국은 북한을 일방적으로 무장 해제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밀어붙이거나 아니면 회담이 불가능하다는 구실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스럽다. 아니라면 평화 협정과 외교 관계 수립을 통해 상호 군사적 적대 체제를 완전하게 청산하는 구상을 내놓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비핵화의 대가를 민간 투자 허용이라는 방식의, 자신들을 위한 시장 확보 전략을 내세우고 있을 뿐이다. 외교 관계의 정상화는 거론조차 하지 않고 있다. 항복 문서에 조인하면 이후 필요한 조처를 취해주겠다는 식이다. 어떤 주권 국가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를 풀기 위한 수단이 매우 제한적인 문재인 정부는 입장이 곤란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판문점 선언을 명분으로 한미군사합동훈련 맥스선더 실시를 북한과 미국의 정상회담 이후에 검토하겠다거나 전략 자산 무기까지 포함된 방식은 피했어야 한다. 북한의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한 상황을 자초한 셈이다. 잘 나가던 흐름에 뼈아픈 일격이다. 그러니 대세에 지장이 없다는 식으로 넘어갈 것이 아니라, 깊이 짚고 돌아봐야 한다.

맥스선더가 '연례적이고 방어적'이라는 해명했지만, 상대가 북한이라는 한미동맹의 기본을 주목하면 이런 자세는 설득력이 없다. 적대 행위 개념에 기초한 군사훈련이 아니라면, 애초부터 할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체의 적대 행위 중지가 답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단호하게 판문점 선언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줄수록 양양이라고 바로 이때다'라며 냅다 덤벼들어 상대를 무릎 꿇게 하려는 제국의 전략은 위험천만하다. 일체의 적대 행위를 중지하기로 했으면 중지해야 한다.  

"남과 북은 지상과 해상, 공중을 비롯한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하였다."

판문점 선언 2항의 1번 조항이다. 빼도 박도 못 하게 명확한 내용이자 문장이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우리가 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 못하는 것이다. 동맹의 한 축이 수락하지 않는 합동훈련은 없다. 이를 실행하지 못한다면, 한국은 주권 국가가 아니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의 비핵화 조처에 병렬적으로 배치되는 미국의 대북 적대 정책의 종료, 거기서 해답을 찾으면 된다.  

적대 관계 소멸이 아닌 평화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 미국이 북한 해체 전략을 시도하는 순간, 우리에게 재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