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전문가 20인 “탄핵 판결 후 혼돈의 시간 온다”
대학교수·여론 조사자·평론가 등 정치 전문가 20인 ‘탄핵 판결 전망’ 전화 설문조사
유지만 기자·김은샘 인턴기자 ㅣ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7.03.07(화) 09:47:34 | 1429호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선고일을 3월7일쯤 발표할 예정이다. 변론 종결 후 결정까지 통상 2주가 걸리는 점에 비춰봤을 때, 3월10일이나 13일이 ‘운명의 날짜’로 거론되고 있다.
현재 서울 광화문과 시청 일대는 탄핵에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집회가 주말마다 열리고 있다.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면서부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3월4일 어느덧 19번째가 된다. 탄핵에 반대하는 탄핵 반대 집회 역시 16번째에 이르렀다. 탄핵 반대 측도 헌재 판결이 가까워질수록 참여자가 늘어, 경찰은 주말마다 차벽을 설치하고 탄핵 찬성 집회 참가자와 반대 집회 참가자의 접촉을 막고 있다. 헌재 판결을 앞두고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양상이다.
박 대통령 탄핵재판은 이제 인용 혹은 기각이라는 두 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지만, 그 후폭풍은 현재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사저널은 대학교수와 여론조사자 등 정치 전문가 20인을 대상으로 3월1일부터 3일까지 3일 동안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탄핵재판 결과가 어떤 후폭풍을 몰고 올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다. 이들에게 탄핵재판에 대한 전망과 함께 대선 정국에 어떤 변화가 오게 될지, 어느 후보에게 유리하고 불리할지에 대해 포괄적으로 물었다.
© 시사저널 고성준·시사저널 이종현
전문가 20인 중 10명 ‘인용’에 무게
전문가 대부분은 헌재의 판결에 대한 전망을 내놓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국민적 여론을 봤을 때는 탄핵을 찬성하는 측이 많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전문가 20명 중에서 10명이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2명은 기각에 비중을 뒀고, 나머지 8명은 유보 입장을 밝혔다.
헌재가 탄핵을 인용할 것이라 예상한 유창선 정치 평론가는 “이미 드러난 사실만 가지고도 헌재가 인용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이나 임용 여부와는 관계없이, 수사를 통해 박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너무 많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탄핵 기각 내지는 각하 예상에 대해서는 “역사에 이름이 남을 재판이기 때문에 (재판관들도) 박 대통령을 무조건 막아줄 이유가 없다. 탄핵에 찬성하는 국민의 여론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태순 정치 평론가는 “미국에서도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라며 헌재의 결론에 대한 섣부른 예측을 조심스러워했다. 그는 “실제 탄핵제도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230년 역사 동안 하원에서 탄핵소추된 대통령은 3명이지만 상원에서 가결돼 파면된 대통령은 없다”며 “인용이 되든 기각이 되든 미국조차 한 번도 가지 못한 길을 우리가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금 다른 견해를 내놨다. 이 교수는 기각 내지는 각하될 가능성에도 어느 정도 무게를 뒀다. 그는 “재판관들이 법리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불확실하다”며 “법은 해석의 영역에 있는데, 변호인들의 논리 하나가 재판관들의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누가 어떤 논리로 생각을 바꿀지는 모르는 일이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헌재의 판결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헌재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헌재 재판관들의 성향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헌재 재판관 중에는 보수인사도 있고 진보인사도 있지만, 예전에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리지 않았나. 성향이 무엇인가는 헌재의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모든 공이 헌재에 넘어간 마당에 집회로 인해 갈등이 증폭된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신 교수는 “‘최순실 사태’라는 것이 정권의 위기인데, 정권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로 넘어갔다. 정치인들이 집회에 자꾸 나가는 것은 오히려 갈등을 증폭시키는 것”이라며 “지금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제도를 믿고 조용히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는 기득권의 시각에서 봤을 때 오히려 탄핵이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황 전 교수는 “헌재 재판관들 역시 기득권을 지키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 헌재 재판관들은 정치적으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향은 관계가 없다. 리얼리스트적 성향이 있다면 인용이 되겠지만, 김기춘 같은 마음을 가진 재판관이 있다면 기각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명 중 2명 ‘기각’ 전망…8명은 유보 입장
김용철 부산대 행정학과 교수는 탄핵 기각 결정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헌법과 법률을 위반한 중대한 사유란 거의 내란과 관련된 반역죄다. 헌재가 반역죄에 준하는 중대한 범죄, 내란 선동과 반역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미국에서 파면된 사례가 없다는 점 △국회소추안의 근거 부실 △정책 추진에서 발생한 과실은 탄핵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김 교수는 “미국과 독일, 프랑스도 정책 결정이나 집행으로 인한 과실은 탄핵심판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수층 일부도 탄핵 인용 찬성”
여론조사 관련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나온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탄핵 인용에 무게를 실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실장은 좀 더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했다. 권 실장은 “지금까지 탄핵 인용 여부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는 거의 78% 선을 전후해서 형성되고 있다. 현재 이념 성향 분포를 보면 중도가 30~40%, 진보가 27~28%, 보수가 20%대 초반이다. 진보와 중도를 합쳐도 보수를 더 포함해야 탄핵 인용에 찬성하는 숫자가 나온다. 이 말은 곧 보수층 일부도 탄핵 인용을 찬성하는 여론이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권 실장은 “이 말은 곧 탄핵이 인용됐을 경우 진보중도층뿐만 아니라 보수층의 일부도 야권에 쏠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 역시 “탄핵 인용이 현재 대선 주자별 지지도나 민심에 부합하는 결정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이병일 엠브레인 이사도 “여론상으로는 탄핵 찬성과 반대가 8대2 정도의 양상인데, 현재의 국면이 탄핵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탄핵 판결에 따른 촛불집회와 탄핵 반대 집회의 양상에 대해서는 “갈등이 더욱 거세질 것”이란 의견과 “인용된다면 보수단체 집회는 오히려 동력을 잃을 것”이란 관측으로 갈라졌다. 특히 인용될 경우보다는 탄핵이 기각됐을 경우 벌어질 혼란에 대한 우려가 더 많았다.
박상병 정치 평론가는 “탄핵이 인용될 경우에는 바로 대선 정국이라 판세를 읽기가 간단하지만, 기각될 경우에는 복잡할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황상민 전 연세대 교수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황 전 교수는 “탄핵 인용 결정이 난다면 권력이 바뀌기 때문에 탄핵 반대 집회 측은 대선 정국으로 잽싸게 돌아서겠지만, 문제는 탄핵이 기각됐을 때”라고 말했다. 그는 “기각될 경우 탄핵을 주장해 온 사람들은 돌아설 수도 없다. 인용이 돼야 하는데 기각이 되면 안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 내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라고 우려했다. 박상헌 공간과미디어연구소장은 “탄핵이 인용된다면 촛불집회의 동력은 모두 대선으로 옮겨갈 것이고, 탄핵 반대 집회 측에는 어떻게 대오를 유지해서 후보를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다. 광장의 에너지는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준석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집회 간 갈등은 지금이 막바지에 도달한 것이고, 결정이 난 다음에는 현재 있는 사안들을 계속해서 이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탄핵이 인용된다면 대통령에 대한 사법적 처리 논의와 눈앞에 다가온 대선에 대한 논의로 빠르게 넘어갈 것”이라고 관측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탄핵 기각 시 발생할 혼란을 상당히 우려했다. 그는 “탄핵이 기각될 경우 격렬한 소용돌이가 칠 것이다. 진보진영 촛불집회의 경우 그동안 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분노를 드러낼 것이다. 보수진영은 기세등등하게 만세를 부르겠지만 역풍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탄핵 반대 집회에 대한 비판도 엄청나게 커질 것이고, 진보와 보수 간 대결 구도가 훨씬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98주년 3·1절인 3월1일 서울 광화문에서 경찰 차벽을 기준으로 탄핵 반대 집회(왼쪽)와 탄핵 촉구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갈등 심해질 것” “대선으로 옮겨갈 것” 엇갈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탄핵 찬반 집회의 갈등은 어떤 결정이 나와도 사그라들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에서부터 대선이라는 이슈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대통령선거는 국민의 주목도가 높은 이슈다. 이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양측의 갈등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 이러한 사회적 혼란은 다음 정부가 출범해도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다음 정부 출범 후 있는 첫 번째 선거인 내년 지방선거를 주목했다. 그는 “내년에 있을 지방선거가 다음 정부에 대한 첫 번째 평가가 될 수 있다”며 “(탄핵) 이슈의 연장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핵 판결 후 벌어질 혼란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헌재 결정 이후에는 집회가 불법 선거운동이 될 수 있지만, 어느 한쪽으로 헌재 결정이 나더라도 잠잠해지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한쪽은 불복하면서 분노의 강도가 세지고 집회 등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강로에서] 탄핵 후 분열은 亡國의 지름길이다
박영철 편집국장 ㅣ everwin@sisapress.com | 승인 2017.03.09(목) 14:46:23 | 1429호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그날이 되면 어쨌든 결론은 나올 것입니다. 인용, 기각, 각하 셋 중 하나겠죠. 여기서 각하는 박 대통령이 선고 전에 하야(下野)하는 경우를 염두에 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는 인용 아니면 기각이 많이 거론됩니다. 현재로서는 인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세상사가 다 그러하듯이 재판도 뚜껑을 열어봐야 압니다. 보수로 분류되는 재판관 중 상당수가 신문(訊問)에 별로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흔히 법관들은 법리(法理)에 따라 재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법은 정치의 종속물일 때가 많습니다. 같은 사안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법리 적용이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한 건 이 때문입니다.
©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문제는 선고 이훕니다. 선고 전부터 벌써 승복 여부를 둘러싸고 기싸움이 대단합니다. 특히 박 대통령 진영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올 시에는 내란 운운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런 작태는 언어도단(言語道斷)입니다. 재판에 승복하는 것은 법치주의의 근간입니다. 재판 결과가 마음에 들 때만 승복하겠다는 것은 이 나라 민주주의가 퇴보했다는 결정적인 증거로 보입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념전쟁입니다.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일련의 행위는 좌파와 우파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몰상식의 문제로 볼 만한 대목이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박 대통령을 찍은 우파 중에서도 배신감을 느끼거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부끄럽다는 사람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지율 4%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지 않았겠죠.
문제는 상식과 몰상식이 이념대결로 변질됐다는 것입니다. 촛불집회는 주최 측은 있었지만 초기에는 일반 국민들의 대거 참여로 순수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사 뭐든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입니다. 촛불집회가 매 주말 계속되고 집회에서 ‘이석기 석방’ 같은 좌파 구호가 나오고 ‘사드 배치 반대’ 같은 정치적 주장이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침묵을 지키던 일반 국민들이 “이건 아닌데” 하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잘못했다는 생각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종북세력이 활개 치거나 안보를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틈을 비집고 서서히 골수 박근혜 지지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념싸움이 되면 내 잘못은 안 보고 남의 잘못만 봅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이미 그렇게 변질됐습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탄핵 결과가 어찌 나오든 앞으로는 피 튀기는 내전 양상만 전개될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이 민족주의 광풍(狂風) 시대라는 겁니다. 민족주의는 20세기 전반부의 낡은 유물로 치부됐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냉전 종식 후 민족주의는 점점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약소국 위주로 바람이 불었던 민족주의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4대 강국을 모조리 휩쓸고 있습니다. 강대국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로 연결될 공산이 큽니다. ‘지금이 어느 시댄데 제국주의 이야기를 하느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저도 그리 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시대 흐름이 어떨지 모르겠군요.
우리 주위에 세계 4강이 다 있고 이들이 민족주의로 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 못 잡아먹어서 혈안이 돼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처럼 영남·호남, 좌파·우파 프레임에만 매몰돼 있으면, 우리 주위 열강(列强)에게 손쉬운 노리개로 전락할 것입니다. 지금 중국이 우리한테 보이는 광태(狂態)는 우리가 자초한 것입니다. 국민적 깊은 반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헌재는 헌법에 승복하게 돼 있다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어떤 불법도 (…) 신이 임명한 관헌들 스스로 법을 파괴해 저지른 범죄보다 더 큰 범죄는 없다."
독일의 법학자 폰 예링이 법률을 팔아먹는 부패한 사법부를 겨냥해 한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이제 박영수 특별검사의 최종 수사 결과 보고를 통해 우리에게 다시금 공명된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사태들은 '법의 살인자'라는 최상급의 비난이 가해지기에 충분한 범죄이다. 그것은 단순한 법률뿐 아니라 최고법인 헌법 자체를 훼손하고 파괴하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의 존재 이유를 총체적으로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국회의 소추의결서라든가 혹은 검찰 특수수사본부의 발표, 그리고 특별검사의 발표 등을 종합하면 박근혜의 탄핵 사유는 차고도 넘친다. 소위 '7시간'은 물론 세월호 참사 당일 24시간 내내 정말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유기하였던 일이나, 이재용과 뇌물을 수수하면서 정경유착에 빠져든 것은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하여야 할 국가 의무를 부정한 것이며,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라는 우리 헌법의 명령 그 자체를 위반한 명실상부한 반헌법적 작태이다. 최근 터져 나온 블랙리스트 사건은 국민을 '국민'과 '비국민'으로 나누어 통치하던 저 일제강점기의 작태를 반복 재생산한 것이다. 그 자체 탄핵심판에 주요한 참고 사례가 된다. 그 외에도 대통령의 권한과 직무를 비선실세에게 떠넘기면서 국가 기밀사항까지 누설한 것이라든지, 국가공무원은 물론 사기업의 인사에까지 개입하여 법치를 농단한 것 등은 그 하나하나가 탄핵 사유로 모자람이 없는 헌법 유린 행위이자 법 질서 교란 행위이다.
한마디로 누가 봐도 탄핵 사유들은 하나같이 너무도 명백하여 대통령을 파면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가까워지자 두 개의 이상한 정치판이 벌어진다. 탄핵심판 각하론과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프레임이 그것이다. 탄핵심판 각하론은 대통령측 대리인들이 주도하면서 탄핵 반대 세력들이 무비판적으로 편승하는 정치술이다. 그들은 특검의 존재에 대한 부정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잘못되었다는 이유로 탄핵심판을 아예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헌법에 대한 무지로 가득 차 있다.
우선 특검 위헌론부터 보자. 이미 헌법재판소와 헌법학계는 이명박의 내곡동 사건에서 야당이 주도하여 지명하는 특검 절차는 합헌이라고 결론을 내었다. 그것은 권력분립의 틀 안에서 야당과 그로 구성되는 국회에 의한 권력 견제 장치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박영수 특검에 대해서도 동일한 판단이 가능하다. 더욱이 그 특검법 자체가 여야의 합의에 의하여 통과되었으며, 대통령은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야당이 지명한 이 특검에게 임명장을 주었다. 법에 대해 조그만 지식만 있어도 이런 특검제에 대해 위헌 운운할 용기는 없을 것이다.
탄핵심판의 절차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때 13개의 탄핵 사유를 각각 의결하지 않은 점이나 헌법재판소가 8인 재판관 체제로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것, 그리고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을 앞두고 무리하게 변론을 종결시켰다는 점 등을 빌미 삼아 절차가 잘못되었으니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제들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가 2004년의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이나 혹은 2014년의 헌법소원 심판 사건 등의 결정 혹은 헌법재판소의 그동안의 관행들을 통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확인되었고, 따라서 헌법적으로는 온전히 정리된 것들이다. 그래서 이런 주장은 하등의 근거도 논리도 없는 무책임한 소음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헌법적으로 무의미한 각하 주장을 계속 이어나간다.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그에 불복하기 위한 트집거리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박근혜와 그 호위부대들이 다시 정치세력으로 규합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가장 저급한 권력욕을 위하여 헌법과 법률, 그리고 헌법재판소까지도 공격하고 부정하는 반헌법적 작태는 여기서 또다시 반복된다.
승복 프레임은 이런 와중에 작동한다. 실제 그 질문은 탄핵 반대 세력에 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불복을 선언하며 폭력적 반발까지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그러기에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한 승복 여부로 전환되어 촛불 시민들과 유력한 대선주자들을 향한다. 요컨대, 그것은 이 질문은 본질적으로 이중의 명령이다. 그 첫째는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해서도 승복하라는 명령이다. 동시에 그 둘째는, 만약 그에 불복한다면 당신들도 탄핵 반대 세력과 마찬가지로 무도한 집단임을 인정하는 셈이 되거나 혹은 법질서를 부정하고 폭력적 혹은 혁명적 수단에 의존해 체제를 뒤집으려는 '좌파' 세력임을 자인한 것이라는 노골적인 복선을 담아낸다.
이 승복 프레임이 촛불집회의 본질을 노골적으로 왜곡하는 것은 이 지점에서이다. 마치 헌법재판소가 모든 촛불 시민의 위임을 받거나 혹은 신탁을 받아 고고하고도 도도한 결정을 내리는 주체인 양 허위의 의식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작년 10월 29일의 제1차 집회부터 지금까지 촛불 시민의 일관된 주장은 적폐의 청산을 위한 박근혜 퇴진이었다. 그 퇴진의 수단들은, 촛불의 힘으로 직접 끌어내리는 방법에서 정치적 압박을 통한, 혹은 자진 사퇴의 형식 등등 다양하게 제시되었다. 수만 명이 수십만 명으로 그리고 종국에는 전국에 걸쳐 수백만 명으로 확장되는 과정에서 촛불 시민들은 스스로의 힘을 확인하였고 그 결집된 동력으로써 박근혜의 퇴진을 이끌어낼 충분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절차는 그 여러 방법 중의 하나로 선택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만에 하나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기각하게 되면, (법과 정의를 향한 국민의 요구를 거역한 헌법재판소에 대한 응징은 별도로 하더라도) 촛불 시민들은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면 된다. 플랜 A가 실패하면 플랜 B가 작동하는 법이고, 그것도 불발이면 플랜 C를 만들어내면 된다. 이것은 그 어떤 의미에서도 불복이 아니다. 오히려 좌절하지 아니하는 우리의 전술적 선택이며, 주권자로 자리 잡는 우리의 정치적 의지의 발현이다. 우리의 촛불은 탄핵심판에서의 승리를 넘어, 박근혜의 퇴진이자 그로 상징되는 적폐의 청산이며, 헌법 전문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들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하는 우리의 세상 그 자체를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을 만드는 동력은 헌법재판소도, 소추위원도 혹은 헌법재판소와 헌법 자체를 우스갯거리로 만들어놓은 저 막무가내의 법률가들도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인 것이다.
그럼에도 승복 프레임은 이 모든 길들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하나로 묶어 두려 한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촛불로 확인되는 주권자 우리들의 힘을 애써 부정하려 한다. 우리의 목소리를 헌법재판소가 대신하게 하고, 우리의 요구를 법률가들의 도그마로 대체하려 하며 우리의 일상을 소수 권력자들의 놀이터로 대체하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써 1500만 촛불 시민의 주권을 그들의 전유물로 빼돌리고자 하는 것이다.
다시, '권리를 위한 투쟁'을 외치는 예링에게로 돌아가 보자. 그는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을, 그리고 폰 클라이스트의 소설 <미하엘 콜하스>에서 콜하스를 되살려낸다. 샤일록은 계약서에 명기된 가슴팍 살 1파운드를 위해 이렇게 외친다. "나는 법률을 요구한다." 콜하스 역시 자신의 권리를 위해 군주의 법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비열한 기지를 동원"한 법관은 샤일록에게 패소를 선언하고, "잔혹한 군주사법"은 콜하스를 잔혹하게 억압한다.
이 두 사람은 운명은 여기까지만 공통된다. 샤일록은 무기력하게 그 판결에 '승복'하고 패자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베니스의 상인법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그 법은 샤일록이 속한 유대인 천민계층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그들만의 법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반면 콜하스는 "내가 이렇게 짓밟혀야 한다면 인간이기보다는 차라리 개가 되는 게 낫겠다"고 하면서 그 판결을 거부하고, 그 사법 권력을 향해 한바탕 전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 잃어버린 권리를 목숨 바쳐 되찾는다. 부패한 사법부가 망쳐버린 법을 원래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에 복구시킨 것이다.
'불복'과 '승복'은 이렇게 엇갈린다. 그러나 현재의 승복 프레임은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애써 지워버린다. 탄핵심판의 국면은 우리가 헌법재판소에 승복하고 말고의 구조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우리에게 신탁을 내리는 사제가 아니라, 우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여야 하는 우리의 대리인 내지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정작 승복해야 할 자는 우리가 아니라 헌법재판소이며, 승복의 대상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아니라 우리가 치켜 든 촛불이다. 우리는 그들의 법에 자기의 권리를 내맡겨버린 샤일록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 우리의 주권을 찾기 위해 그들로부터 빼앗은 칼을 촛불로 닦아내는 또 다른 콜하스들이다.
지난 주말의 촛불집회는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그것은,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_박근혜"를 외쳤던 제1차 집회 이래 도합 15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무려 19주째나 연속하여 한 목소리로 만들어낸 우리들의 광장에 붙여진 이름이다. 동시에 그것은 지난 시대 우리를 억눌렀던 그 수많은 적폐의 결집체이자 그 상징으로서의 박근혜를 몰아내어야 한다는 우리들의 준엄한 결단이자 명령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엄중한 명령을 받들어야 할 제1차적인 수범자이다. 그러기에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앞둔 이번 주만큼은 촛불의 명령은 헌법재판소를 향한다. 헌법재판소는 우리의 명령에 승복하라!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
탄핵 당사자와 정치권, 승복의 원칙 준수할 책임 있어
유창선 시사평론가 ㅣ sisa@sisapress.com | 승인 2017.03.08(수) 16:00:45 | 1429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해 가고 있다.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2월27일 최종 변론기일 때 “어떠한 예단이나 편견 없이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서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해 올바른 결론을 내리기 위해 지금까지 모든 노력을 다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헌재는 대통령이 직무정지 상태에 있는 국가적 혼란 상황을 조기에 종식시키기 위해 빠르고 집중적인 심리를 해 왔다. 속도와 공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거듭되는 헌재 모독 발언과 돌출적인 언행에도 헌재는 인내하면서 무리 없이 재판을 이끌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해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선고일이 돼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특검 수사를 통해 드러난 박 대통령의 수많은 헌법·법률 위반 행위를 생각하면 헌재가 인용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그래도 국민들은 긴장 속에서 선고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선고가 있기도 전에 불복(不服)하겠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탄핵이 인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보니까,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쪽에서 그런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변호사들은 아예 헌재 법정에서 불복을 시사하는 발언들을 꺼냈다. 손범규 변호사는 2월25일 “구성조차 안 된 헌재에서 8인 또는 7인의 헌법재판관이 ‘9인의 재판관으로부터 재판을 받을 권리’까지 침해해 가며 사건의 평의·선고까지 하는 건 재심 사유”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심판에 관여한 법조인들은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모두 역사의 죄인이 될 것”이라는 극언을 했다. 이제까지 8인 심리를 인정하며 진행해 왔고, 한동안 일정을 지연시켜 7인 심리를 노리다가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으니 선고 후 불복하고 재심을 요구할 수 있다는 얘기를 꺼낸 것이다.
2월27일 이정미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변론을 주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대통령 탄핵 반대쪽 ‘탄핵 불복’ 시사
그런가 하면 헌재 변론에서 막말을 계속해 물의를 빚었던 김평우 변호사는 집회에 나가 “헌재 결정에 복종하면 노예다” “탄핵소추안은 사기와 거짓말”이라며 “조선시대도 아닌데 복종하라면 복종해야 하느냐”는 말로 사실상 불복을 선동하고 나섰다. 조원룡 변호사도 “축구할 때 심판이 편파 판정하면 그 경기를 승복해야 하는가, 아니면 나와야 하는가”라며 헌재 결정에 불복할 뜻을 내비쳤다. 더욱 기막힌 것은 그래도 헌법기관의 결정에 대한 승복을 말해야 할 여당 정치인들까지도 불복성 발언들을 하고 있는 광경이다. 자유한국당의 정치인들은 태극기를 몸에 두르고 탄핵 반대 집회에 나가 “박 대통령은 탄핵될 이유가 없다” “국회에서 엉터리로 올린 것이기 때문에 헌재는 각하하면 된다”며 헌재를 압박하는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들을 보면 이미 탄핵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인용 결정을 예상하고 불복하기로 작심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대통령 대리인단이 헌재를 모독하는 상식 밖의 언행을 일삼았던 것도 헌재의 불공정성을 주장해 불복의 명분으로 삼으려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특히 나라를 이 지경으로까지 만든 데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할 대통령 측과 여당 정치인들이 석고대죄는 하지 않을망정, 이렇게 불복까지 부추기는 모습을 보면 도대체 나라를 어디까지 끌고 갈 셈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 대리인들과 여당 정치인들이 이러니까 ‘백색 테러’의 움직임들까지 등장하고 있다. 탄핵 반대 집회들에서는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다.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다”는 위협이 나오는가 하면, 헌법재판관들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다는 극언까지 나오고 있다. 이미 김평우 변호사가 헌재 변론 때 “헌재가 공정한 심리를 해 주지 않으면 시가전이 생기고 아스팔트가 피로 덮일 것”이라며 “탄핵 인용 시 내란이 일어날 것”이라 했던 말 그대로인 셈이다. 실제로 이정미 권한대행을 살해하겠다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한 사람이 경찰수사가 시작되자 자수한 일까지 있었다.
“시가전, 아스팔트 피, 내란” 공권력은 방치
이쯤 되면 무법천지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지경이다. 시가전, 아스팔트에 피, 내란, 이런 얘기들이 다중(多衆)이 있는 장소에서 공공연하게 주장되고 선동이 계속되는데도 공권력은 그냥 방치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일로 나라가 지금과 같은 혼돈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인데도, 다시 대통령 편을 들어주기 위해 헌법과 법률을 위반하는 언행이 계속되는 것을 경찰이나 검찰이 발본색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에게 반대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가혹했던 법치의 잣대가, 대통령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관용적인, 법치의 이중 잣대를 발견하게 된다. 이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책임져야 할 일이다. 정부가 그러니, 헌재에 불복하자는 선동이 거리낌 없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은 반대의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물론 탄핵 인용 결정이 날 것이라는 게 대부분의 예상이지만, 만에 하나 기각 결정이 난다 해도 승복 이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게 된다. 물론 그런 경우 시민들이 그 같은 결정에 항의하는 촛불을 드는 것은 표현과 집회의 자유 영역에 속하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경우는 헌재의 결정에 승복하는 것이 옳고, 실제로 승복하지 않을 다른 방법도 없다.
나라가 무척 어렵다. 경제, 북한 문제, 외교 문제 등 조기 대선으로 새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감당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이다. 그런 마당에 헌재의 결정은 갈등이 정리되는 계기가 돼야지,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특히 탄핵의 당사자들과 정치권은 승복의 원칙을 준수할 책임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박근혜 없는 3월'도 봄은 아닐 수 있다"
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 투쟁이 그동안 이룩한 그 많은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이는 헌재의 탄핵 인용을 기정 사실로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은 것은, 단지 박근혜 정권과 보수 세력이 다시 준동을 시작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준동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그보다 진짜 문제는 광장의 정치에 대해 그동안 쏟아낸 수많은 의미 부여와 온갖 전망이 어느 새 축소되거나 자취를 감추고 있다는 데 있다. 지금 이 같은 현실을 맞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광장의 분노와 열기를 정치적, 계급적으로 상승시켜 내지 못한 데 따른 불가피한 결과다.
탄핵 이후
탄핵은 당연히 인용되어야 하며, 인용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그렇더라도 광장이 거기에만 얽매여서는 안 된다. 지금 중요한 것은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현실화하기 위한 준비와 대비를 해야 하는 일이다. 이는 벌써부터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에 대해 광장이 분노하고 있듯이 탄핵은 정권 퇴진의 일부일 뿐이다. 나아가 정권 퇴진 또한 그 성과를 광장의 것으로, 대중 자신의 것으로 확실히 거머쥐어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광장이 내건 요구를 쟁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껏 탄핵 이후 광장의 진로에 대해 확실한 결정이 나 있지 않은 상태다. 아무리 탄핵에 집중하기 위한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지금도 너무 늦은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현실에서 즉각 퇴진, 정권 퇴진 요구는 탄핵 인용 요구로 상당히 축소, 굴절되어 있다. 나아가 헌재 결정에 대한 승복 여부가 쟁점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이른바 '태극기 집회', '박근혜 대리인단'이 탄핵에 대한 불복종 선언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 실정이다. 승복 프레임은 탄핵 이후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노림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광장이 쟁취한 성과를 기존 제도(정치) 안으로 (재)흡수하려는 것이다.
승복 프레임이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게 다가 아니다. 그것은 겉으로는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거기에 승복하라는 협박으로 들리지만, 이를 통해 거두려는 정치적 핵심은 탄핵 이후에는 광장을 그만 끝내라는 것이다. 지금 여야 할 것 없이 기존 정치권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탄핵 이후에도 광장에서 계속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광장은 이미 승복의 대상이 아니라, 승복을 강요하려는 자들을 오히려 승복시킬 수 있는 정치의 주체(실체)로 우뚝 서 있다. 이를 확실히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광장은 탄핵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되어야만 한다.
물론, 광장이 과연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며, 계속될 수 있을 것인지는 예단하거나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기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는 광장이 요구한 긴급 과제가 해결될 때까지, 시간적으로는 대선 기간을 포함해 민주노총에서 계획하고 있는 6월 '사회적 총파업' 때까지다. 그런데 만약 그 때까지도 박근혜 구속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광장은 박근혜 구속 때까지로 당연히 연장되어야 한다. 이조차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기준이다. 사실 광장은, 광장의 정치가 일상의 정치로, 광장 바깥의 영역으로 확산될 때까지, 나아가 노동자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로 이어질 때까지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어야 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라도 지금은 최소한의 기준만이라도 확실히 제시되어야 한다. 탄핵 즉시 광장은 여전히 계속된다는 것을 곧바로 선언해야 한다.
분수령
이제 공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 국민행동'(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에게로 다시 넘어왔다. 지금 정세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은 특검과 헌재가 퇴장한 자리를 정치권이 독점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지난 대의원 대회에서 광장의 정치를 살리고 강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정치적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퇴진 행동 또한 광장의 진로와 과제를 제시하는 데 내적으로는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비록 퇴진행동이 단일한 조직이 아니고 연대체이긴 하지만, 또한 민주노총이 정치조직이 아니고 대중조직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그동안 광장에서 행한 말과 행위에 대해서만큼은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민주노총은 머뭇거리지 말고 퇴진 행동을 적극적으로 이끌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민주노총에게는 그럴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이 있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역사에 커다란 잘못을 저지르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당장 광장의 대중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머지않아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도 다시 대중들과 분리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금 광장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에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만이 아니라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의 조직적 행위가 있다는 것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광장의 진로와 과제에 대해 시민 개개인은, 아무리 그 합이 크더라도, 제시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의지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광장 자체(전체)는 외적으로는 직접민주주의를 체현하고 있지만, 광장 내부적으로는 아직 전면적으로 그러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는 누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현 단계 '진보-좌파' 세력의 역량과 대중의 상태를 반영하는 불가피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광장의 미래를 시민 개개인에게 물을 수는 없다. 광장의 미래에 대한 제시는 일단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먼저 꺼내야만 한다. 물론, 그러한 행위는 어디까지나 임의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광장을 대변하고 있다고는 할 수 있어도 아직 대표하고 있지는 못한 때문이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은 지금까지 감당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비교적 최선을 다했지만, 적극적으로 감당을 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망설여왔다. 즉 스스로 정치적 시험대에 오르는 것을 회피해왔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럴 수 없다. 탄핵이라는 분수령이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지금 광장을 끝낼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 안에도 탄핵 이후 광장의 진로와 과제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은 적어도 위에서 말한 기준만이라도 합의를 해야 한다. 만약 그러지 못한다면 합의를 이룬 부위가 광장을 계속 진행해야 한다. 이조차 삐꺽거린다면 광장의 정치는 기존 정치권에 의해 재흡수 당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진보-좌파' 세력과 민주노총이 대선 공동 대응을 사실상 성사시키지 못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 이를 다시 성사시키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가능성이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다. 광장을 계속해 나간다면 그 속에서 대선 공동 대응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방안이 열릴 수도 있다. 그 방안은 퇴진 행동과 민주노총이 광장의 정치적 대표성을 획득하는 것으로부터 열리거나, 광장의 요구에 의해서 열릴 수도 있다. 어쨌든 그럴 가능성은 오직 퇴진행동과 민주노총이 탄핵 이후에도 광장을 계속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할 수 있다. 이 또한 탄핵 이후 정국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봄
"박근혜 없는 3월, 그래야 봄이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박근혜 없는 3월에도 '박근혜 없는 박근혜 정권'은 여전할 수 있다. 아니 심지어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야당과 야당 대선 주자들의 행태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야당은 지금 정국에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대응을 못하고 있다. 역풍이일까 두려워 단순히 몸조심을 하는 차원이 아니다. 이런 현실은 야당이 '개혁'하려는 의지도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다. 스스로 내건 '개혁 입법'조차 관철하고 있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 이 땅의 정치적 계절은 봄은커녕 동토가 되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는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경제 위기도 더욱 심화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생존권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상황이 다가올 수 있는 가능성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탄핵이 되더라도 노동자 민중에게는 아직 여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일 뿐이다. 지난 이명박근혜 정권 10년이 지긋지긋하다고 해서, 그 이전 자유주의 정권 10년으로 돌아가는 것이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예컨대 광장이 요구하고 있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긴급 과제조차 해결할 수 없는 정권 교체라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노동자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가로막는 정권 교체라면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권 교체인지 되물어야 한다. 어차피 그것들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노동자민중 자신이 결국 투쟁을 통해 획득해야 하는 일이다. 누구도 이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실제 광장에서는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라는 공감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이를 나타내는 요구에는 여전히 힘이 실려 있다. 시민 개개인은 어떤지 몰라도 집단으로서의 광장은 분명 그러하다. 광장이 계속되어야만 하는 매우 직접적인 이유다. 뿐만 아니라 탄핵 이후에도 '태극기 집회'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또한 광장이 계속되어야 하는 현실적 이유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진행동과 민주노총은 지금 광장을 계속해 나갈 준비와 태세를 분명히 갖추고 있지 않다. 퇴진 행동은 3월 11일을 "국민 승리를 축하하는 촛불을 들자"고 하고 있다. 그럴 필요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3월 11일은 광장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선언하는 집회가 되어야 한다. 3월 11일 집회가 광장을 마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광장이 대선 정국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만이라도 이번 기회에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그래야 봄이다.
“탄핵 판결 후 ‘문재인’ 대 ‘非문재인’ 대결”
정치 전문가 20인의 탄핵 후 정국 전망
유지만 기자 김은샘 인턴기자 ㅣ redpill@sisapress.com | 승인 2017.03.07(화) 11:26:24 | 1429호
박근혜 대통령 탄핵 판결 이후에는 곧바로 대선 정국이 이어지게 된다. 설혹 탄핵이 기각된다 하더라도 현 정권이 제힘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은 본지가 설문조사한 정치 전문가 20명 모두가 공통적으로 내놨다.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세론’에 대해서는 “본선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보수층 결집이 변수가 될 것이란 예상이다. 현재 보수 후보 중 1위인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 에 대한 예상도 조금씩 엇갈렸다.
전문가 대부분은 정권교체가 될 것이란 예상에는 동의했다. 현재 ‘대세론’의 주인공인 문재인 전 대표의 대권 가능성을 높게 점치면서도, 탄핵 후 결집할 보수층의 표가 누구에게 향할지에 주목했다.
박상병 정치 평론가는 “제3지대 후보가 누구인지에 따라 굉장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일단 민주당 대선후보가 문 전 대표가 된다고 봤을 때, 이 대항마는 여권이 아니라 제3지대에서 나올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의 정권교체는 사실 ‘패권교체’라는 지적이 많다. 대선 정국에서 보수는 문재인을 절대 찍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층에서 마땅히 찍어줄 만한 후보도 없다. 그렇다면 이 표가 제3지대 후보를 찍을 텐데, 어느 후보로 결정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해 치러질 대선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非문재인’ 후보 간의 대결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왼쪽부터) © 시사저널 이종현·고성준
“문재인과 맞붙을 후보가 관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중도보수층의 표심을 주목했다. 최 원장은 “문재인이 싫었던 중도보수층이 안희정 주변에 머물렀는데, 현재 안 지사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안 지사가 주저앉고 경선 문턱을 못 넘을 경우에는 이 표가 막판까지 계속 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부동표(浮動票)는 이도 저도 아니다가 막판에 확 기울었지만, 지금은 뭔가 의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마지막까지 살펴보는, 살아 있는 부동표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어떤 방식으로든 문 전 대표의 대세론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신 교수는 “탄핵 인용과 기각 여부에 따라 자신의 주장과 다른 결과가 나온 세력은 상당히 단결할 가능성이 크다. 인용이 되면 보수 쪽이 단합할 것이고, 기각되면 진보 쪽이 단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민주당 내 경선에 대해서는 “‘하나마나 문재인’이라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데, 민주당은 문재인으로 굳어졌다. 오히려 경선 이후 안 지사를 지지했던 표가 어디로 가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 역시 문재인 대세론이 강해질 것이라는 점에 손을 들어줬다. 김 소장은 “어떤 사람들은 탄핵이 인용될 경우 보수층이 안 지사에게 가지 않겠냐고 하는데, 이는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중도보수층은 가치보다는 이익에 기반을 둔 투표를 하는데, 안 지사가 그들의 가치에 부합하는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지사에게 표를 주기 힘들다”고 말했다. ‘선의(善意)’ 논란으로 인해 지지율 부침(浮沈)을 겪고 있는 안 지사가 중도보수에 매력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공약’을 내놔야 하는데, 안 지사가 현재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소장은 또 “보수인 바른정당 지지층 중에 지지율 1등이 안 지사다. 국민의당 지지층에서도 안철수 전 대표와 안 지사가 비슷하게 나온다. 하지만 이런 지지율은 모두 뜬구름이다. 안 지사의 진정한 지지층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탄핵이 인용된다면 국민들은 심판 문제보다는 누가 더 국정을 잘 운영할 것이냐를 중요하게 보게 될 것이다”며 문재인 대세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그는 “탄핵이 인용될 경우 탄핵 반대 집회 측의 분노와 집단행동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는데, 정치권이 얼마나 아우르는지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왼쪽)과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 사진공동취재단·시사저널 박은숙
“보수 1위 황교안, ‘책임론’으로 출마 부담”
황교안 권한대행의 출마에 대한 전망에서는 ‘불출마’가 많았지만, 마땅한 후보가 없는 보수층에서 황 권한대행에게 표를 밀어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다만 ‘박근혜 정권 책임론’ 때문에 본인이 출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임혁배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보수진영에 후보가 없어서 황 총리의 지지율이 올라갔을 뿐이다.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혁명적인 분위기가 일어날 텐데, 그때 황 총리는 출마가 아니라 사퇴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전 교수는 “확실하게 황 총리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며 “정치를 해 보지 않은 사람이 쉽게 뛰어들 수 없을 것이고, 명분도 굉장히 약하다. 사실상 황교안 카드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황 총리의 출마가 좋은 사례는 아니라고 본다. 보수 세력을 빠른 시간 내에 규합하기에는 시행착오도 많을 것이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사례를 살펴보면 될 듯하다. 정치권에 있는 기성정치인 중에서 보수층의 대선후보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 역시 “황 총리는 질 것을 알면서 나갈 만한 인사가 아니다”고 답했다.
황 권한대행에게 상당한 힘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권순정 리얼미터 조사실장은 “황 총리가 가능성 있는 후보로 인식된다면 소위 ‘샤이 보수’의 숫자는 줄어들 것”이라며 “만약 탄핵 전에 황 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거나 그것에 준하는 발언을 한다면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황 총리에게 보수층의 표가 쏠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여전히 보수층에는 마땅한 후보가 없고, 결국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란 분석도 있었다. 이병일 엠브레인 이사는 “현재 보수층에는 기존 후보든 새로운 후보든 표가 결집될 수 있는 후보가 나오기까지는 상황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오히려 안철수 전 대표가 보수까지 아우르면서 문재인에 맞설 수 있는 후보가 되겠다는 전략을 들고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민주당 경선, DJ·盧 세력이 한팀이 돼야 한다
이충렬 작가 '무능한' 진보정부, 반복 안 되려면 해야 할 일
'친박 시위대'의 성조기 크기는 태극기의 두 배
지난 1월 21일, 서울 종로구 대한문 앞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과 대형 성조기를 펼쳐들고 행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한민국의 이른바 '애국 보수'들이 집회에서 성조기를 흔든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모르긴 해도 국내 정치 문제로 미국 대통령의 사진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한국의 보수들은 왜 걸핏하면 미국과 아무 상관도 없는 문제를 가지고 성조기를 흔들까? 자기 나라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다면서 어찌 남의 나라 국기와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나오는 걸까?
행진에 등장한 성조기는 3차로를 덮는 대형 크기였던 반면 태극기는 그 절반 정도밖에 안 됐다고 한다. 이게 도대체 자칭 '애국 보수'들이 주최한 집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애국을 가장한 국적 불명의 가짜 보수들의 진짜 국적은 어딘가? 대한민국인가 미국인가? 아니면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어느 여고생의 신랄한 표현처럼 '대한미국'인가?
집회 참가자들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성조기를 든 이유로 '미국 참전과 구호 지원, 한미 동맹 강화, 트럼프의 박근혜 지지 기대'등을 꼽았다. 그들이 성조기를 든 이유를 하나씩 짚어보자.

▲ 지난 2월 18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탄핵 반대 집회에 태극기보다 큰 성조기가 등장했다. ⓒ연합뉴스
첫째, 미국의 한국전 참전이다. 미국은 일제가 항복하기 5일 전인 1945년 8월 10일 38선을 일방적으로 그어 한반도를 분단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8월 11일 트루만 대통령은 '미군은 한반도에 있는 일본군을 무장해제하고 항복을 받기 위한 군작전 편의상 일시적으로 한반도를 분할하며 본 군사작전이 끝나는 대로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다.
미국이 제안하고 구 소련이 동의해 획정된 38선을 경계로 분단된 한반도 북부에 1945년 8월 8일 소련군이 진주했고, 미군은 한 달 뒤인 9월 8일 남부 인천항에 도착한다. 1950년 6월 25일 발생한 한국전쟁은 종식되지 않은 채 분단은 70여 년째 지속되고있다. 소련군은 1948년 12월 북한에서 철수했지만 미군은 아직도 남한에 주둔하고 있다.
한반도를 분단하여 '두 개의 한국(Two Koreas)'이 존재하게 되었고, 이데올로기가 서로 다른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하게 되면서 통일과 독립을 위한 전쟁을 피할 수 없게 만든 것은 바로 미국이다.
물론 미국이 한국전에 참전한 것은 공산주의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지키고 남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의 예를 들어보자. 1940년대 중반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이 중국 대륙 지배를 위한 국공 내전을 벌였다. 이 전쟁에서 공산당에 밀렸던 국민당은, 중국이 공산화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미국의 참전을 간청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외면했고, 결국 지금의 남한 영토보다 100배가 더 큰 중국이 공산화되고 말았다.
이를 보더라도 중국땅의 100 분의 1도 안 되는 남한 땅과 중국 인구와는 비교도 안되는 남한 사람들을 공산국가인 북한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미군이 수만 명의 군인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싸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미국은 소련과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른 자국의 국익을 수호하기 위해 한반도를 분단했고, 참전했고, 같은 이유로 지금도 남한에 미군을 주둔하고 있다. 남한의 안보나 통일 따위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러니 미국에 대한 맹목적인 짝사랑은 그만 접고 제발 성조기 좀 그만 흔들란 말이다.
다음은 한국전쟁을 전후한 미국의 구호 지원 문제이다. 탄핵 반대 집회에 성조기를 들고 나온 한 여성 참가자(66세)는 "한국전쟁 때 미국이 원조해 준 강냉이죽, 전지분유가 없었으면 우린 다 굶어 죽었을 것이다. 미국은 은인의 나라"라며 고마워했다. 한 남성 참가자(72세)는 "한국전쟁에서 우리를 도와주기 위해 수많은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늘 미국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인 중 일부가 이렇게까지 친미적인 성향을 띄는 것은, <한국전쟁의 기원>을 집필한 브루스 커밍스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가 지적했 듯이, 해방 이후 줄곧 왜곡된 역사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결코 '은인의 나라'만은 아니다. 분단의 원흉이기도하고, 통일을 가로막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한 한국땅에서 성조기는 계속 휘날릴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1905년 미국이 일본과 밀약을 맺어 조선을 배신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민족의 운명은 지금과는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들 어쩌면 국토분단도 민족상잔도 없었을 것이고 통일된 자주독립국가가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전쟁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근본 원인을 알게 되면 미국이 준 강냉이죽과 분유에 감읍하여 성조기를 다시 치켜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병 주고 약 주는 나라임을 잊어선 안 된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것은 베트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였듯, 미군이 한국전에 참전해 싸우다 죽은 것 또한 그들의 국익을 위해 그랬던 것뿐으로 우리가 특별히 감사해야 할 이유가 없다. 미국을 구세주처럼 여기는 쓸개빠진 한국민과는 달리 민족 자존감이 강한 베트남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한국군 파병을 전혀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민족이다.
둘째, 한미 동맹 강화다. 세계적인 국제정치학자인 전 시카고대 한스 모겐소 교수가 강대국과 약소국 간에 체결한 가장 대표적인 불평등 동맹의 사례로 꼽은 '한미동맹'은 강화할 것이 아니라, 굴욕적인 내용을 대폭 개정해 대등한 동맹 관계를 만들어야 할 대상이다. 일방적으로 국익을 훼손해가면서까지 고수해야 할 동맹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동맹에 입각해 한국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전액 부담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미 해마다 1조 원 이상 방위비를 분담하고 있고 세계 최대 미군 기지인 평택미군기지 건설 비용 107억 달러 중 96%를 한국이 부담하고 있는데도 걸핏하면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위협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미국에 퍼주는 천문학적인 돈으로 자주국방력을 배양해 우리 안보는 우리 스스로 지킬 테니 철수할 테면 언제든 하라고 미국에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셋째, 트럼프가 박근혜에 대한 지지를 해줄 것이라는 기대다. 만에 하나 탄핵을 기각하도록 트럼프가 헌법재판소에 압력이라도 넣어 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에서 그의 얼굴이 새겨진 대형 성조기를 펼쳐들었다면 이는 내정간섭을 자초하는 부끄러운 짓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이 주권독립국가가 아닌 미국의 속국임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삼일절과 광복절에도 성조기를 휘날리고 미국 국가를 연주할 만큼, 어쩌면 토박이 미국인들 보다도 미국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한국 보수들에게, 미국이 그토록 좋으면 차라리 '미국의 51번째 주 편입 청원 범국민운동본부'라도 만들어 집회 때 자칭 애국 보수들을 상대로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어떨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당부하고 싶다.
한국적 경제주의를 넘어서자
지난 번 칼럼에서 나는 촛불 시민이 무너뜨려야 할 것이 박근혜 정권과 재벌 체제만이 아니라고, 바리게이트 안쪽의 우상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글의 결론은 기성 사회운동이 새 세대의 사회 변화 요구에 부응하려면 '1987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 '1987년 이데올로기'와 작별하자!)
그럼 '1987년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경제주의'를 강조하고 싶다. 경제주의란 무엇인가? 경제적 이익 추구를 다른 어떤 가치보다 우위에 두는 태도다. 그래서 다른 가치조차 경제적 합리성의 틀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태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주의는 너무도 당연한 전제이기에 특별히 '이데올로기'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다.
주류 경제학은 모든 인간이 경제주의에 따라 행동한다고 전제한다. 그리고 우리는 일상에서 대체로 그렇게 행동한다. 오직 과거 역사와의 대조를 통해서만 이게 우리 시대만의 특징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본주의 태동기에는 자본가 집단의 독특한 사고 및 행동 양식이던 것이 이제는 지구 자본주의 안에 살아가는 거의 모든 대중의 문화가 됐다.
한국적 경제주의 – '추격' 의식
경제주의는 한국에만 유별난 현상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경제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유독 강한 힘을 발휘하는 역사적 맥락이 있다. 한국 사회에 뿌리 내린 경제주의의 독특한 형태가 존재하며, 이것이 특히 지배력을 행사하는 영역이 따로 있다. 말하자면 '한국적' 경제주의가 있다.
한국적 경제주의의 발단은 박정희 정권 이래의 압축 성장이다. 이 시기에 국가 권력은 시민들에게 지적, 도덕적 스승으로 군림했다. 단순히 군홧발로 짓누르기만 한 게 아니다. 삶의 모범까지 가르치려 들었다. 국가가 '좋은 삶'이 무엇인지 규정하고 그 실천 지침까지 꼼꼼히 교시했다. 새벽마다 TV에서는 박정희가 작사, 작곡했다는 '새마을 노래'가 울려 퍼졌다.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를 반복하며.
국가가 제시한 '잘 사는' 것, '좋은 삶'이란 무엇이었던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에는 일단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 초가집이 없어진 자리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넓힌 길은 자가용 승용차가 가득 채웠다. 그것은 이른바 선진국의 막연한 이미지였다. 정부 선전과 기업 광고, 주류 매체의 프리즘을 거쳐 대중의 눈에 비친 선진국, 주로는 미국의 이미지였다.
압축 성장의 지휘자인 국가 권력은 선진국들을 '추격'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다. 경공업을 따라잡고, 중화학공업을 따라잡고, 정보화를 따라잡고, 그러다 보면 우리도 선진국이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추격은 지구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 줄곧 후발 자본주의 국가들의 생존-발전 전략이었다. 영국 이외의 모든 공업국은 어느 정도는 추격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한국의 추격에는 남다른 데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은 유례없이 빠른 속도로 앞선 공업국들을 따라잡으려고 사회 역량을 총동원했다. 국가기구의 지휘를 받으며 모험 투자에 나선 재벌도, 노동조합도 제대로 없이 노동 경쟁에 내몰린 노동자도, 고향을 떠나 이제 막 낯선 도시의 달동네에 정착한 이농민도 모두 다 추격전의 경기장에 섰다. 역사상 1930년대 소련 말고는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산업화 총력전이었다. 그러면서 추격의 세계관이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스며들었다.
국가가 제시한 '좋은 삶'의 이미지를 따라잡는 게 보편적인 삶의 목표가 되어갔다. 앞선 이들이 거둔 경제적 성공을 나 역시, 우리 가족 역시 반복해야 했다. 후발 재벌은 앞선 재벌을 따라잡고, 중간층은 부유층을 따라잡고, 가난한 이들은 중간층을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즉, 전 사회적인 추격전 양상이 나타났다. 국가는 선진 자본주의를 추격했고, 시민들은 '좋은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간 듯 보이는 바로 위 계층을 추격했다.
이런 '추격' 의식을 통해 이 나라에는 어느 자본주의 사회보다 빠르고 깊게 경제주의가 뿌리내렸다. 상층 계급을 추격 대상으로 보는 한, 계급 사이에 분명한 선이 그어질 수 없다. 본래 계급이란 거리 두기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들이 자본가에게 거리를 둘 때, 비로소 노동 '계급'을 말할 수 있다. 이 거리로부터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말하는 '계급의식'이 형성된다. 자본가 집단에게 친숙한 경제주의 이데올로기는 이 간극을 뛰어넘는 데 애를 먹는다. 자꾸 경제적 이익 아닌 다른 가치를 내미는 집단적 고집, 자부심, 기풍과 맞닥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추격 상황에서 거리란 좁혀야 할 무엇일 뿐이다. 중간층에게 부유층은 미래의 자기이고, 노동자들에게는 중간층이 그렇다. 그럴수록 상층 계급의 사고 및 행동양식이 쉽게 아래로 퍼져나간다. 이게 압축 성장 시기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가기구와 자본가 집단이 솔선수범한 경제주의 이데올로기를 너도 나도 열심히 모방 학습했다. 하루빨리 따라잡아야 할 '좋은 삶'의 이미지와 경제적 이익 추구를 점점 더 일치시키면서 말이다.
대중의 경제주의를 정당화해준 1987년 이후 사회운동의 경제주의
'1987년 이데올로기'의 경제주의는 이런 대중의 경제주의 자체는 아니다. 이를 뜻한다면, '1987년 이데올로기'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해를 따서 '1962년 이데올로기'라 하거나 유신 독재 수립 이후 새마을 운동이 요란하게 확대된 해를 따서 '1973년 이데올로기'라 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1987년 이후 진보 세력과 사회운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주의가 이완되기는커녕 더욱 확산되고 강화됐다는 사실이다. 1987년 이후의 사회운동은 경제주의와 대결하거나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히려 경제주의가 전성기를 이어나갈 수 있도록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주고 자기 정당화 논리를 제공했다. 대중의 경제주의를 오인하고 이와 결탁하도록 부추긴 사회운동의 경제주의가 작동했다.
냉정히 돌이켜보자. 1987년부터 지금까지 민주화 세대, 민주노조 1세대가 현실에서 이뤄낸 것은 무엇인가? 집단적 추격의 성공이다.
과거에는 국가 권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저마다 추격전을 펼쳤지만, 1987년 이후에는 추격에서 뒤쳐진 이들이 힘을 모아 국가 권력과 충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충돌을 통해 나아가려는 방향 자체는 바뀌지 않았다. 3저 호황 이후 전성기를 맞이한 한국 자본주의에 편승해 앞선 이들을 따라잡으려 했다. 덕분에 민주화 세대는 국가가 그토록 선전하던 '좋은 삶'의 이미지가 실제 어떤 것인지 맛보았고, 상당수 조직 노동자들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진보 세력(나도 그 일부이니 아래 내용은 '자기' 비판이기도 하다)은 이런 흐름에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니, 이를 옹호하고 역사 진보의 의미를 부여했다. 진보좌파는 기업별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투쟁에서 '계급투쟁'을 보았다. 물론 이게 계급투쟁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거기에는 또 다른 한국적 맥락이 있었다. 자본과의 치열한 대립 이면에서 한국적 경제주의의 핵심인 추격 의식이 반복, 확산되고 있었다. 진보좌파가 계급투쟁의 전진에 가슴 벅차 한 그 순간에 실제 전진한 것은 대중의 경제주의였다.
이런 오인과 무능의 근저에는 노동 '계급'을 둘러싼 지극히 단순한 관념과 환상이 있었다. 진보좌파의 머릿속에는 두 가지 층위의 노동 계급만 존재했다. 하나는 경제적 피착취자인 현재의 노동계급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래에 모든 모순을 해결할 주체인 혁명적 노동계급이었다. 그리고 전자를 후자로 성장시키는 것이 계급투쟁이었다.
사회운동 세력은 이런 관념에 따라 노동조합의 모든 투쟁을 '계급투쟁'이라 정당화했다. 이 틀에서는 집단행동의 주된 동기가 단지 경제적 이익 추구인지 아니면 이를 넘어선 가치를 동반하는지 식별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위의 두 노동 계급은 실재라기보다는 허구에 가깝다. 단순히 자본의 피고용자라는 위치만으로는 노동 '계급'이라 하기 힘들다. 아직 사회 세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혁명 주역으로서의 노동 계급은 여전히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다. 현실의 노동 세력이 그런 존재에 근접한 순간들(가령 100년 전의 러시아 대도시들)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까지는 '예외적' 순간 쪽에 더 가까웠다.
노동 '계급'이란 말에 부합하는 실체는 오히려 이 두 허구 사이의 어떤 존재다. 달리 말하면, 노동 계급의 또 다른 층위가 존재하며, 실은 이게 '현실' 노동 계급이다. '경제적' 노동 계급과 '혁명적' 노동 계급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회적' 노동 계급이 그것이다. '사회적' 노동 계급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상식과 표준으로 들이미는 지배 집단과의 거리를 통해 식별된다. 이들은 항상 지배 집단과는 구별되는 신념과 정서, 가치를 내세울 준비가 돼 있기에 경제주의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포섭되었다고 말하기 힘든 집단이다.
한국의 진보좌파가 수용한 마르크스주의는 이런 '사회적' 노동 계급의 존재를 전제하는 이념-운동이었다. 이 층위의 노동 계급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 '계급 투쟁'을 이야기하며 '혁명이냐 개혁이냐'를 논쟁하는 사조였다. 한 세기 전의 유럽에서는 이게 별 문제가 아니었다. 사회주의 이념-운동이 번성할 무렵에 실제로 이런 노동계급이 형성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노동계급, 그러니까 실제의 노동 '계급'이 어떠한 존재이고 어떻게 형성되는지 이론화하는 작업도 뒤늦게야 등장했다. 이런 노동 계급에 해체 위기가 닥칠 즈음에야 말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좌파는 유럽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당연시되던 이 현실 전제가 한국 사회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지 못했다. 이들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전투적 민주노동조합들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담론의 현실 근거를 찾았다. 마치 '사회적' 노동 계급이 이미 등장했다는 듯이 고전 사회주의 담론을 반복했다. 그래서 대기업, 공공부문의 분파적 경제 투쟁이 곧 '계급 투쟁'이 됐다.
이는 민주노동조합운동에도 결코 좋은 일이 못 됐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신생 노동조합운동은 다양한 가능성을 함께 품고 있었다. 집단적 추격 운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짙기는 했지만, 자본-국가가 결코 교시한 바 없는 사회 연대의 씨앗도 담고 있었다. 후자를 찾아내고 성장시키는 것이 진보 세력과 사회운동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변별과 발견, 양육의 노동에 실패했다. 이것이 촛불 이후 우리가 극복해야 할 '1987년 이데올로기'의 핵심인 진보-사회운동의 경제주의다.
새로운 전체를 제시해야 한다 – 연대 사회를!
어떻게 해야 진보-사회운동의 경제주의 경향을 극복할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해답을 찾으려는 모색은 이미 여러 곳에서 시작되는 중이지만, '1987년 이데올로기'의 관성이 이런 시도들을 가리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항쟁으로 1987년 항쟁 이후의 한 시대가 매듭을 지은 지금은 더 이상 이런 관성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치부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기성 사회운동과 2017년 세대의 만남은 영영 기약할 수 없다.
아마도 출발점 중 하나는 '계급 투쟁'이라는 말로 흔히 상상하던 바에서 벗어나는 일일 것이다. 가장 흔한 것은 사회 세력들이 전체를 어떻게 나눌지를 놓고 투쟁한다는 관념이다. 서로의 몫이 있고 그 몫을 늘리려고 싸운다는 것이다. 또 다른 통념은 전체의 참 주인을 가리려고 투쟁한다는 것이다. 빼앗겼던 전체를 일거에 되찾는다는 식의 혁명관 말이다.
그러나 사회 세력 사이의 투쟁은 이제 이것들과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하고 상상해야 한다. 누가 더 나은 전체를 제시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싸움으로 바라봐야 한다. 이는 더 매력 있고 인간적인 전체를 예시하는 세력이 승리하는 싸움이다.
전체란 곧 '사회'다. 그리고 부도, 권력도 없는 세력이 내세울 전체의 미덕이란 '연대'뿐이다. 여기에서 경제주의의 질긴 관성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찾을 수밖에 없다.
'정치, 국제정세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헌법재판소 박근혜 전원일치 파면 결정문 - 비로소 유신이 끝났다 (0) | 2017.03.10 |
|---|---|
| 만약에 탄핵이 기각된다면 벌어질 '악마의 시나리오' (0) | 2017.03.10 |
| 누가 촛불 시민을 치어리더로 만드는가? (0) | 2017.03.08 |
| "대통령 복, 지지리도 없는 나라" - '인구 절벽', 재앙이 아닐 수도 있다 (0) | 2017.03.06 |
| '8:0 탄핵'이 필요한 이유 (0) | 2017.03.04 |